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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net

탈중앙화에 대한 환상

by 세균무기 2018. 10. 24.

나는 블록체인 기반의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하는 한 회사에서 IT서비스 기획자이자 프로덕트 매니저로 다수의 ICO 플랫폼과 DApp, 전자지갑을 기획하였고, 최근에는 암호화폐 거래소 런칭에 참여하고 있다.



블록체인 업계에서 일을 하다 보면 중앙집중형 시스템은 아주 못된 악의 축이자 과거의 유물이고, 탈중앙화된 분산형 시스템인 블록체인은 착하고 민주적이며 아주 세련된 시스템인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소비자는 그동안 포털이나 인터넷 서비스의 피지배자로서 억압과 착취를 당해왔고, 블록체인 기반의 DApp은 소비자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그 이익을 분배하는 (벌써 이 정도 이야기만 들어도 충분히 착하고 멋진 서비스처럼 들리지 않는가?) 너무나도 민주적이고 매력적인 서비스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대학교 교수이자 경제학자인 누리엘 루비니 교수가 '블록체인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과장되었고 쓸모없는 기술이며, 암호화폐는 온갖 사기와 거품의 어머니'라고 비난을 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
물론 난 루비니 교수의 비난 중에서 블록체인에 대한 이야기엔 전적으로 반대하고, 암호화폐에 대한 이야기는 반절은 동의하는 편이다.

그런데 과연 우린 지난 20년 동안 인터넷 서비스의 피지배자로서 억압과 착취만 당해왔던 것일까?
언제 어디서든 정보를 공유 및 검색하고, 전 세계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거리를 걸으며 음악을 듣고, 쉽게 쇼핑을 즐기며, 초행길이라도 걱정 없이 길을 찾고, 오랜 기다림 없이 택시를 잡으며, 공유 경제를 통해 소득을 창출하는 등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얼마나 많은 편의를 누려왔는데 말이다.

그런 면에서 IT종사자들은 정말 해커이자 급진적 진보주의자들이다.
그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애써 쌓아 온 역사를 자신들의 손으로 때려 부수기를 수도 없이 해대며 보다 더 편한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파괴적 혁신 및 기술(Disruptive innovation and technology)에 열광을 할까!
이렇듯 스스로를 부정하고 때려 부수며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는 IT업계에서 새로운 기술인 블록체인에 열광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나조차도 지난 10년 동안 중앙집중형 서비스를 만들어왔는데 탈중앙화된 분산형 시스템인 블록체인 업계로 이직하여 블록체인이 제 4차 산업혁명을 이끌 기술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자기 파괴적인가!

그런데 블록체인 현장에서 바라보는 블록체인은 기술만 놓고 보면 매우 Disruptive(그냥 '파괴적'이라고 써도 되지만 이렇게 쓰면 없어 보인다고 하니 굳이 영어를 써봤다. 요새 블록체인 업계 상황이 이렇다.)한 기술로 중앙집중형 시스템에서 발생했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으며, 비즈니스 모델에 기대지 않고 사회에 긍정적인 가치를 제공하려던 여러 프로젝트들이 인간의 선의와 자발적 동기 부여에 의존해 대부분 실패하였지만 이 블록체인 기술에 얹힌 토큰 비즈니스를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
그러나 블록체인과 관련된 사람들이 대외적으론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언급하며 블록체인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현실은 대다수 프로젝트들이 토큰 비즈니스를 통한 한탕주의에 빠져있으며, 블록체인 기술의 탈중앙화의 가치 역시 여러 프로젝트들에서 이미 밝혀진 것처럼 관리의 필요성 등을 역설하며 중앙화 되어 가고 있고, 토큰 비즈니스를 통한 수익의 탈중앙화 역시 소수의 배를 채우는 비즈니스로 전락하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이 정도면 다행인 것이 블록체인 관련 뉴스를 보고 있으면 허구한 날 스캠과 해킹, 펌핑 이슈만 가득하다.
위대한 기술이 결국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타락해버린 것이다.

2,000년대 후반에는 IT업계에서 시대를 구분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Web 2.0 시대로 개방과 참여, 공유의 시대였다. 이런 시대적 트렌드로 인해 컨텐츠가 폭발적으로 생산되었고 이 생산된 컨텐츠가 인터넷 서비스 회사의 서버에 쌓였다. 그리고 이 쌓인 정보들을 바탕으로 서비스 회사들은 사용자들에게 보다 편리하고 가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 해킹 피해가 발생하고 빅브라더 논란이 커지는 등 중앙집중형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와 논란도 커져갔다.
그러던 와중에 블록체인 기술의 등장과 함께 비트코인 등의 암호화폐의 광풍으로 탈중앙화가 어느새 트렌드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오죽하면 웹의 정신은 정보의 공유이며, 정보의 파편화가 우려스럽다고 모바일앱보단 모바일웹이 우리의 미래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 인터넷의 아버지, '팀 버너스 리'마저도 솔리드 프로젝트로 사용자가 업로드하는 모든 정보를 분리된 클라우드 서버나 로컬 PC에 저장해서 탈중앙화를 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미래는 탈중앙화가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과연 사용자도 탈중앙화를 원할까?

내가 블록체인 업계에서 체감하는 바로는 사용자는 딱히 중앙집중형 시스템인지 분산형 시스템인지에 대해 관심이 없다.
단지 기업이 마케팅과 비즈니스 이슈로 탈중앙화를 강조할 뿐 사용자는 딱 보상(토큰)에만 관심이 있다.
즉 동일한 사용자 편의성과 가치, 보상을 제공한다면 중앙집중형 시스템이건 분산형 시스템이건 어떤 시스템이건 상관이 없다는 이야기인데 아쉽게도 두 시스템 모두 동일한 가치와 보상을 제공할 수는 있어도 분산형 시스템이 중앙집중형 시스템과 같은 사용자 편의성을 제공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블록체인 DApp과 전자지갑, 거래소 등을 한번이라도 써 본 사람이라면 중앙집중형 시스템에 비해 블록체인 서비스들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 잘 알 것이다. 모르겠다면 토큰 비즈니스를 설명한 백서를 읽어보거나 입출금을 한번만 시도해보자. 
그리고 한 기획자 입장에서도 사용자 편의성을 높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블록체인 플랫폼을 이용하다 보니 어렵고 불편하다는 점을 알면서도 개선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 많다.

사용자는 중앙집중형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업자가 정보 관리에 소홀하여 해킹을 당하는 등의 보안 문제가 발생해서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때만 큰 관심을 가질 뿐 평소에는 이 시스템이 어떤 시스템인지는 관심조차 없다.

단지, 그 가치와 편의성, 보상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중국의 인터넷 서비스를 보라.

중국 15억 인민의 개인정보를 공공정보처럼 활용하며 빅브라더가 되고 있지만 사용자들은 이로 인해 쉽고 편하며 놀라운 사용자 경험을 하고 있고 우린 그 모습을 보며 놀라고 부러워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중국처럼 빅브라더가 되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정부와 기업이 사용자 정보에 대한 보안과 관리를 철저하게 하면서 동시에 놀라운 가치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한다면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그 서비스를 열광하며 사용할 것이다.
내가 현장에서 느끼는 대다수의 사용자들은 개인정보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다. 소수의 사용자들만 개인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할 뿐 대다수의 사용자들은 해킹으로 피해가 발생할 때나 평소 보이지 않던 관심을 보일 뿐이다.
페이스북 등의 인터넷 서비스들이 보안을 위해 설정에 수많은 기능들을 제공하고 있지만 내 주변의 사람들 중 그런 기능이 있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인 것을 보면 말이다.

나는 블록체인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기술이면서 동시에 IT업계에 탈중앙화라는 좋은 화두를 제공한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현재의 블록체인과 그 기반 서비스들이 너무 사용자에게 어렵고 불편하며 최적화된 서비스를 기획하고 개발하는데 여러 제약사항이 많고 법적, 제도적 시스템이 갖춰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중앙집중형 시스템들이 탈중앙화라는 화두를 받아들이며 진화하는 편이 더 빠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직까지 블록체인 서비스들, 특히 토큰 비즈니스를 적용한 서비스들이 대중화된 서비스의 지위를 영위하기 까진 가야 할 길이 참 멀고도 험난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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