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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필리핀에서 발생한 수면제 범죄와 관련하여

by 세균무기 2012. 2. 3.

현재 필리핀 마닐라에 거주하고 있는 나로서 눈에 띄는 사건이 있어 이 이야기와 함께 필리핀 주재 대사관에겐 일침을, 필리핀을 여행오는 여행자들에겐 주의를 당부하고 싶어 뻔하고 뻔한 블로깅을 한다. 

2월 2일 00:59분 dcinside에 ‘[도와주세요] 필리핀에서 있었던 일’이라는 글이 트위터와 SNS 등을 통해 퍼지면서 자국민이 외국에서 겪은 강도사건에 성의없는, 그리고 뒤늦은 대처를 했다는 이유로 외교통상부가 일방적으로 많은 지탄을 받고 있다. 사실 재외국민이나 여행자가 해외에서 고초를 겪었는데 대사관이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해 욕을 먹은 것이 어디 하루 이틀 문제인가 싶다.
외교통상부는 이 사건과 관련하여 다음 아고라 (‘안녕하십니까, 외교통상부 온라인대변인입니다.’ - 2월 3일 9:56분)와 트위터 (하단 이미지 - 2월 2일 오후 6~7시경) 등을 통해서 최근 필리핀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는 수면제를 사용한 강도사건에 대한 경고와 함께 여행자들과 재외국민들에게 각별히 조심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런데 디씨인사이드에 올라온 논란이 되고 있는 글과 외교통상부에서 작성한 내용을 가만히 살펴보면 발생한 사건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디씨인사이드에 올라온 글의 사건을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월 29일 오후 4시경 필리핀 마닐라에서 가장 큰 리잘파크(작성자가 쓴 바와 같이 도심 한복판이 맞다. 그러나 사실 필리핀에서 명동이건 홍대입구이건 그건 중요치 않다.)에서 무장괴한들에게 협박 후 납치를 당하였고 ATM을 통해 800만원의 현금을 갈취 당하였으며 그 시간대가 11시경 정도 되었다고 한다.  
왜 사건 직후 택시를 타고 호텔에 갔는지는 모르겠으나 호텔에 도착, 그 이후 마닐라 경찰서를 갔으며 영사콜센터를 통해 대사관 담당자와 연락하였으나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 내일 9시에 오라.’는 말뿐이였다고 한다. 
그 다음날이 되어서도 대사관의 불성실한 응답과 결국 경찰서에 도와주러 오지 않아 대사관에 가서 전후 상황을 설명하였다고 한다. 
결국 이 여행자는 악질적인 필리핀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느려터진 필리핀 경찰에 실망하고, 급기야 나몰라라 하는 한국 대사관에게 마저도 실망을 했다고 하니 울분을 토할 수 밖에 없는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참고로 필리핀 공무원들에겐 기대하지 마시라. 돈을 한 움큼 쥐어줄 수 있는 현금이 없다면.

외교통상부가 다음 아고라를 통해 간단히 설명한 글을 살펴보면 위 당사자가 겪은 사건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외교통상부는 1월 29일 한 여행자가 리잘파크에서 처음 만난 필리핀 3명과 함께 술을 마신 후 정신을 잃었고 그 다음날 새벽 통장에서 현금이 인출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사건이 있었으며 새벽 1시 반경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당직 영사가 날이 밝으면 사건/사고 담당 영사(경찰주재관)을 통해 도움을 받으라고 안내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날 담당 영사는 피해 여행자와 통화해 사전 전말을 상세히 확인하고 즉시 마닐라 경찰 당국을 접촉하여 신속한 수사를 요청하였으며 현지 경찰과 긴밀히 협력하여 사건을 처리 중이라고 한다.

이런 저런 글들을 짜맞춰보고 필리핀에서 살면서 겪은 경험들에 비추어 볼 때 이러지 않았을까 싶다.
한 대학생 여행자가 필리핀 마닐라에서 가장 큰 공원인 리잘파크에서 친절하게 다가오는 필리피노 3명과 함께 술을 마셨는데 아무래도 그 술에 수면제가 타있었으며 수면제에 취한 여행자를 흉기로 협박하여 현금을 갈취한 것 같다. 사건 직후 대사관에 연락을 하였으나 당직 영사관이 시간이 너무 늦은 새벽이고 또 자신의 담당업무가 아니기에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연락을 하라고 업무 프로세스 그대로 읆었을 것이 분명하다. 

To. 대사관에게
원래 업무 프로세스와 규정에 죽고 죽는 공무원이 아닌가. 게다가 필리핀 현지 상황 특성상 하루에도 수백건의 사건 사고가 접수될텐데 국가지원/인력/예산부족 등의 수많은 이유로 어찌 일일이 쫒아다니며 사건을 처리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대사관의 가장 중요한 존재의 의의는 자국민 보호가 아닌가. 필리핀에 거주하는 재외국민들의 수많은 이야기를 들어온 나는 사실 내가 죽지 않는 이상은 어떠한 범죄로도 대사관의 성실하고 적극적인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죽는다 한들 과연 성실하고 적극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도 싶다. 
외국에서 범죄를 겪었을 때 영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여행자가, 설령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한다 치더라도 기댈 건 대사관 밖에 없는데 대사관이 위와 같이 대응한다면 과연 어떤 국민이 실망하거나 분노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반문해보라. 당신이, 당신의 가족이 똑같은 상황에 처한다고 하면 분노하지 않고 이런 저런 이유를 수긍하고 인정할 것인가? 
이런 저런 이유를 떠나 대사관이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그리고 대사관을 믿고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다고 국민들이 떠들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승진과 권력, 명예만 탐하지 말고.

To. 필리핀에 놀러오는 여행자에게
필리핀 내 재외국민수가 50만명에 육박하고 1년에 일주일 이상 머무는 유동인구를 고려하면 약 100만명의 한국인이 필리핀에 머물고 있다. 게다가 총기 휴대가 가능하고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에 비해 가난하기에 한국인과 관련하여 수많은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 필리핀에서 적은 수의 대사관 인력으로 모든 자국민의 요구에 성실하게 응대하는 것이 사실 어렵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부유한 한국인이, 또 여행 온다며 목돈을 가지고 온 여행자들이 들르는 곳과 루트를 살펴보면 범죄에 노출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때문에 재외국민, 여행자 본인 자신이 자신의 안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필리핀 언론매체가 아니더라도 한국에서 한달에 수건씩 필리핀 내 한국인의 사망소식과 범죄 관련 뉴스를 접하는 사람들이, 게다가 총기 휴대가 가능해 모든 빌딩 입구나 MRT(지상철)에서 총기 휴대 검사를 하느라고 길고 긴 줄을 서야 하는 나라에서, 나아가 필리피노들 마저도 범죄 노출에 대한 두려움에 야간 외출이나 우범 지역에 돌아다니는 것조차 꺼려하는 상황에서 돈 많은 한국인 여행자가 혼자서 돌아다닌다거나 생면부지의 필리피노들과 어울린다는 것은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고 밖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실제 필리핀은 전 지역이 1단계~3단계 사이의 여행경보단계에 속해 있으며, 특히 민다나오 섬이나 팔라완섬 일부 지역은 여행제한지역(3단계)에 속해있는 위험국가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선진국이 아닌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필리핀에서 자신의 안전을 위해 각별한 조심이 필요하다.

물론 현지에 살고 있는 나로선 가족, 친지, 친구들이 자주 안전을 묻고 우려하는 것에 대해서 크게 걱정하지 말라며 우습게 넘기곤 하는데 수많은 사건, 사고를 접했기 때문에 나 스스로가 범죄에 노출되지 않도록 생활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실제 인연을 맺고 만나는 필리피노들은 대다수 착한 평범한 이웃이기 때문일 것이다.

필리핀을 찾는 여행자분들이 대사관을 찾기 전에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 주셨으면 좋겠다.

관련 블로깅 : 
2011/08/09 - [Travel life] - 필리핀 여행시 몇 가지 Tip!!

가슴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세균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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