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점심을 먹기 위해 집 근처에 있는 강서수산시장을 찾았다.
고등어조림이나 시켜 먹으려고 했는데 친구가 전어구이와 회를 먹고 있는 옆 테이블을 힐끔힐끔 쳐다보더니 내심 먹고 싶었던지 "전어철이구나~"를 반복해 이야기를 한다.
얼마나 한다고 내가 살테니 전어회도 먹자고 해서 고등어조림에 전어회를 추가했다.
이 음식점, 홀에서 일하시는 이모님들이 다들 알아볼 정도로 나름 단골인 곳이다.
그래서 사장님 몰래 테이블 차지도 까주시더니 전어회도 둘이 먹기 힘들 정도로 수북하게 쌓아주셨다. 어찌나 수북한지 먹어도 먹어도 줄지를 않더라!(화난 것 아니다. 당황한 거다.)
고등어조림에 수북이 쌓인 전어회까지... 음식을 먹은 건지 그냥 목구멍에 때려 넣은 건지 30여분 만에 허겁지겁 먹고 나오려니 배가 찢어질 듯 고통스럽다.
참으로 아둔하다.
주말 오후에 특별한 약속도 없는데 왜 이리 급하게 먹었을까!?!?
친구가 배도 부르니 마실 겸 근교로 나가 바람이나 쐬고 오자고 해서 아라뱃길 전망대로 향했다.
날씨도 너무 좋고 따뜻한 햇살 아래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오랜만에 시야가 탁 트인 전망대에 서서 한강과 서해가 만나는 하구를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자니
아주 오랜만에 잊고 있었던 기억과 감정이 떠오르는 것 같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왜 이리 어색하지?
전망대에서 내려와 1층 로비에 앉아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고 있자니 마침 두 중년의 남녀분이 포크송을 연주하는 작은 음악회가 시작되었다.
십여명 남짓 밖에 되지 않는 관객 앞에서 여성분은 적잖이 긴장을 하셨는지 보고 있는 나조차 긴장되고 불안할 정도로 목소리와 손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힘내시라고 몇 번 친구와 함께 크게 박수를 쳐드렸더니 공연 중간중간 이야기를 하실 때면 우리를 보고 이야기를 하시더라. 특별한 약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여하튼 몸을 쉽사리 일으킬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공연을 보며 통기타의 반주 속에 조용하게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집중하니 빠르게 흘러가던 시간이 점점 느려진다.
그러다 친구의 "야~ 그만 나가자!"라는 말 한마디에 언제 그랬냐듯 천천히 느려지던 시계가 째깍째깍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무런 걱정, 근심 없이 이렇게 망중한이었던 적이 언제였더라?
길지 않은 시간, 필리핀과 중국에서 살 때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정말 많았다.
퇴근 후나 주말엔 마땅히 할 일이 없어 커피숍에 가서 조용히 커피 한잔 마시며 책을 읽거나 한국 TV프로그램을 몰아보고 무료할 정도로 사색도 즐기고 정 할일도 없으면 오고 가는 사람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때론 해변가에 앉아 따뜻한 햇살에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아름다운 석양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기도 했는데 요샌 그렇게 따뜻한 햇살이나 시원한 바람, 그 순간과 나의 감정에 집중하는 시간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아니 아예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정신없이 출근 준비를 해서 사무실 도착해 하루종일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다 저녁 10시, 11시까지 일하고 퇴근해서 TV를 보거나 인터넷 서핑을 하다 나도 모르게 깜박 잠이 드는 일상의 무한반복이다.
그러다 보니 누워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흐르는 구름의 흐름을 쫓지도,
따뜻한 햇살을 쬐며 햇살의 따뜻한 온기를 느껴보지도,
시원한 바람이 털 하나하나를 살랑살랑 흔들며 태우는 간지러움도,
밥 한끼를 꼭꼭 씹어먹으며 자연이 주는 고마움과 식재료 본연의 맛있음을 느껴보지도,
현재 내가 보고 겪는 이 순간에서 느끼는 감정의 변화를 살펴보고 때론 어루만져 주지도 못하며
그냥 시곗바늘이 건전지의 힘을 빌려 일정하게 돌아가듯 나 또한 세상과 시간에 밀려 시곗바늘처럼 반복적이고 일정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래서 전망대에서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그 순간과 감정에 집중하려니 도통 집중도 되지 않고 너무 오랜만이라 어색했던 것 같다.
그 순간과 감정에 집중하는 것조차 너무 어색해져버린 것이다.
이젠 의도적으로 나에게 집중하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여긴 노력하지 않으면 그런 시간을 갖기가 어려운 한국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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