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빅(필리핀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2시간 근교에 떨어져 있는 해안도시로 국내에선 악덕 한진중공업이 진출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으로 사내 팀워크샵을 다녀오면서 마닐라의 지독한 트래픽으로 인해 왕복 6시간이 넘도록 차 안에 지루하게 갇혀있을 뻔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아이패드를 통해 읽고 있었던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를 여유를 가지고 완독할 수 있었습니다. 국내에 있을 때 여자친구가 몇 차례에 걸쳐 읽어보라고 권했었는데 그 때는 그렇게 읽고 싶지 않았던 책이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다시금 도가니 사건이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니 자연스레 저도 손이 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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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완독한 이후 워크샵의 피로에 지쳐 꽤 오랜시간 숙면을 취했는데 ‘도가니’ 내용이 인상이 깊었는지 숙면 중에 제가 청각장애자가 되는 악몽을 꾸게 되었습니다. 소름 끼치는 악몽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번쩍 눈을 떴는데도 악몽이 어찌나 지독했던지 실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고 소름 끼치는 두려움과 공포,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 나쁜 기운이 제 몸을 감싸고 놓아주지 않더군요. 제 인생에서 이런 기분 정말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고립되고 단절되었다는 느낌. 필리핀에 처음 왔을 때 ‘Hi’ 한마디도 하지 못하던 때 겪었던 그런 두려움을 넘어서는 사뭇 다른 공포. 악몽에서 깨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두려움과 공포,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십여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에겐 평생처럼 느껴졌던 그 시간 동안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감히 실제 비슷한 장애를 겪고 계시는 분들께는 정말 송구스럽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후천적으로 청각장애나 시각장애를 겪게되었을 때 그분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좌절을 어느 정도 느끼고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전 다행스럽게도 악몽으로 끝났지만요.
영화 '도가니' 포스터
그런데 시각장애나 청각장애는 언어장애나 신체장애와는 또 다른 느낌인 것 같습니다. 평소 인터넷 중독자처럼 지내기 때문에 며칠을 말을 하지 않고 지내본 적도 있고 골절 등으로 신체 일부를 며칠을 사용하지 못한 적도 있지만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다는 것은 한 순간일지라도 그 두려움과 고통을 비견할 바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바로 연이어 든 생각이 장애를 통해 겪는 고통으로 자살을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오히려 도저히 자살을 생각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잠시 느꼈던 이런 경험(청각장애)에도 이렇게 큰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는데 어떻게 자살을 할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평소 주변사람들에게 제가 완치할 수 없는 죽을 병에 걸리면 과감히 자살을 시도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했었는데 막상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자살을 생각하고 실행할 수 있을 정도로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저로선 상상할 수도 없겠더군요. 10분 정도 동안 그 두려움과 공포에 시달리다 참지 못하고 이 기운을 떨치고자 샤워를 하고 나서야 그 더러운 기운을 떨칠 수 있었습니다.
책 ‘도가니’의 모티브가 되었던 실제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청각장애를 통해 겪었을 그 두려움과 공포,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었을텐데 그들이 믿었던 선생이라는 작자들이 행한 성폭행으로 그들이 겪어야만 했던 그 공포와 고통을 어찌 말과 글, 영상으로 다 표현할 수 있을런지...
그리고 그런 두려움과 공포를 돈으로 해결하려는 그들의 작태에 분노를 감추지 못하겠더군요. 도가니 사건에 대한 관심과 분노가 우리 사회가 외면하고 있는 장애를 가진 분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면서 동시에 이런 일이 두번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려움과 공포, 역경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모든 장애우분들께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 아이들의 절규를 잊지 않기를...
가슴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세균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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