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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net

인구 규모와 디지털 혁신

by 세균무기 2025. 3. 28.

중국의 디지털 서비스 환경은 14억 인구가 만들어내는 수많은 요구와 사용 행태로 인해 한마디로 복잡하다. 하지만 그 혼돈은 동시에 실험의 장이기도 하다.
중국의 서비스는 기능이 겹치고, 정보 구조는 뒤엉켜 있으며, 사용자 흐름은 명확한 논리보다는 반복적 경험을 기반으로 설계된 듯 보인다. 서구식 UI/UX에 익숙해진 한국인들에게는 비효율과 불편의 결정체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안을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혼돈은 결코 우연이나 무지의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사용자 요구를 만족시키면서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 결과이며, 중국이라는 거대한 인구 대국이 만들어낸 특수한 형태의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서비스(커머스 중심) 기획

나는 중국 2/3선 도시에 있는 오프라인 마트 체인들에 O4O 및 옴니채널을 도입하여 스마트매장을 구축하는 한국인 중심의 중국 IT기업인 콰이홍에서 나홀로 기획자이자 프로덕트 매니저로 2년째(

germweapon.tistory.com

 

 

중국의 IT 서비스, 복잡함 속에서 피어난 혁신

 


중국의 인구는 14억 명을 넘는다. 이 숫자는 단순히 시장 규모를 의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안에는 도심의 MZ 세대부터, 중서부 농촌에 사는 고령층까지, 소비력·문화 수준·디지털 리터러시·라이프스타일이 극단적으로 다른 수억 명의 다른 세계의 사용자들이 공존한다. 따라서 이들의 요구는 서비스의 기능적 분화를 야기하고, 그 결과 앱은 복잡하고 덩치가 커진다. 그런데 이 과잉 다양성이야말로 혁신의 토양이 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위챗(WeChat)이다. 텐센트가 개발한 이 앱은 처음에는 단순한 메신저였다. 하지만 곧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송금, 결제, 뉴스, 게임, 택시 호출, 병원 예약, 공공서비스 신청까지 수십 가지 기능을 흡수하며 슈퍼앱으로 진화했다. 중국의 슈퍼앱이 등장하기 전 서구 디지털 생태계에서는 '앱은 한 가지 기능에 집중해야 한다’는 원칙이 지배적이었다.
위챗의 슈퍼앱 전략은 단순한 기능 통합이 아니다. 위챗은 미니프로그램이라는 형태로 수많은 서드파티 서비스를 자기 안에 품었다. 한 달에 10억 명 이상의 사용자가 위챗 안에서 수십 개의 앱을 사용하며 중국인들의 일상에서 필수적인 서비스로 자리잡았다.

핀둬둬(Pinduoduo)는 또 다른 예다. 알리바바의 오픈마켓 타오바오(Taobao)가 온라인 쇼핑 시장을 장악하고 있을 때, 핀둬둬는 3~4선 도시와 농촌 사용자들을 겨냥해 소셜 커머스라는 새로운 전장을 열었다. 사용자는 친구를 초대해 공동으로 구매할수록 할인폭이 커지며, 이는 디지털 소외계층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동시에, 그들만의 구매 문화를 만들어냈다. 핀둬둬의 UX는 종종 '너무 화려하고 정신없다'는 평가를 받지만, 그만큼 시각적 자극과 이벤트 요소가 많은 것이 이 타겟층에 적합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의 디지털 서비스는 기존 질서의 복제자가 아니라, 그 자체로 거대한 실험실이다. 특히 14억 인구가 가져오는 다양성과 밀도는 새로운 시도와 전략을 실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수백만 명이 실패한 기능을 써보더라도, 거기서 얻는 피드백은 수십 개의 스타트업에게 인사이트가 되어 돌아간다. 실패의 비용은 사용자 규모가 크기에 오히려 흡수되고, 성공의 파급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중국은 여전히 지역 간 디지털 격차가 크고, 문화적 배경이나 교육 수준의 편차도 크다. 그래서 모든 것을 고려해야만 전체 시장을 커버리지 하며 크게 성공할 수 있는 시장이다. 단순히 몇몇 고객의 니즈를 수렴하는 수준이 아니라, 사용자의 행동 자체를 관찰하고,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능과 구조를 유기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이 일상화돼 있다. 여기서 나오는 빠른 실험과 반복, 서비스 구조의 적응성은 곧 서비스 기획과 제품 전략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게다가 중국의 테크 기업들은 대부분 자체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텐센트, 알리바바, 바이트댄스 등은 앱 하나의 성공이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하는 마이크로 서비스와 사용자 여정 전반을 통제하고 있다. 마치 자신들만의 통제된 인터넷 안에서 규칙과 설계를 실험하고 확산시킨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용자 시나리오가 축적되고, 특정 기능이 예기치 않게 메가트렌드로 떠오르기도 한다. 틱톡의 알고리즘 기반 숏폼 추천 모델도, 사실은 바이트댄스가 중국 시장에서 확보한 사용자 반응 데이터를 토대로 정교화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중국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혁신이 가능했는가?” 단지 중국 정부의 지원이나 자본의 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핵심은 인구 규모에서 비롯된 다양성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복잡성이다. 그리고 그 복잡성을 수용하고, 기술과 데이터로 조율하며, 빠르게 실험하고 피드백을 반영하는 체계적인 대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따라서 인구야말로 혁신의 토양일 수 있다. 다양한 요구가 존재한다는 것은 곧 다양한 문제의식이 존재한다는 뜻이며, 이는 서비스 기획자에게 수많은 실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인구에 의한 시장의 크기가 중요하다. 충분히 큰 시장은 실패를 용인하고, 새로운 기능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러한 실험은 특정 조건이 갖춰졌을 때, 놀라운 혁신으로 이어진다.

 

 

인구 감소로 인해 IT 산업과 혁신에 위기를 맞고 있다.

 

 

중국을 통해 우리는 ‘사용자 수가 많으면 요구도 다양해서 앱이 복잡해진다’는 단순한 명제를 넘어, 바로 그 다양성과 복잡함 속에서 창발하는 혁신을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인구 구조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한국 사회, 더 나아가 초고령화, 지방 소멸 등 복합적인 인구 변화의 흐름 속에 있는 한국의 서비스 기획자들이 혁신성을 잃어가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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