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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net

SKT의 나쁜 사용자 경험

by 세균무기 2020. 8. 18.

연휴 기간 동안 고향집에 다녀왔다.
IT업종에 종사하는 자식은 고향집에 내려가면 직군에 불문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IT전문가가 되어 IT업계가 쌓아놓은 업보를 CS 처리해야 한다. 이번 연휴 또한 여러 CS 처리를 하고 왔는데 CS 처리를 하면서 나쁜 UX는 무엇인지, 노인분들의 디지털 소외가 얼마나 심각한지 다시 한번 몸소 느끼고 왔다. :(

 


금요일 저녁 고향집에 도착하니 10시가 넘었는데 부모님께서 얼마나 마음에 걸리셨던지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이번 달 통신비가 평소보다 많이 나왔다며 확인해달라고 하셨다. 휴대폰을 넘겨받아 상태바를 보니 집 안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Wi-Fi 대신 LTE가 연결되어 있더라. 이상하다 싶어 내 휴대폰을 꺼내 확인해보니 역시나 Wi-Fi가 연결되지 않는다. 공유기의 녹색불은 빠르게 깜박거리고 있는데. 이럴 때 IT전문가의 일반적인 조치는 전원 스위치를 껐다 켜거나 전원선을 뽑았다 다시 꽂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전원선을 뽑았다 꽂았다. 그러니 Wi-Fi가 연결된다. 어깨가 으쓱해지는 순간이다. :)
한 달 정도 공유기에 장애가 있어 Wi-Fi가 연결되지 않아 LTE로 인터넷을 사용하신 것이다. 게다가 누나네 가족이 중국에 살다 보니 손녀들 얼굴을 보기 위해 자주 화상채팅을 하시는데 LTE로 화상채팅을 하셨으니 평소보다 요금이 많이 나올 수밖에.

그리고 청구서를 살펴보니 데이터가 부족한 것 같아 요금제를 변경하려 SKT 통신사 앱에 들어갔는데 더 많은 데이터를 제공하면서도 가격은 저렴한 실버요금제가 있어 해당 요금제로 변경해드렸다. 어차피 통신사에 연령 정보가 있으니 가입 가능한 연령이 되면 연세를 생각해 유선상으로 안내를 해주고 동의 시 자동으로 변경해주면 좋을 것 같은데 아쉬운 부분이다. 그나마 부모님이야 자식이라도 있으니 쉽게 확인하고 변경을 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저렴한 요금제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계속 비싼 요금제를 사용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모님 모두 장기 사용 고객이다 보니 쿠폰함에 유효기간 만료만을 기다리고 있는 데이터 쿠폰이 수 장이 있었는데 쿠폰이 있는지 조차 모르시다 보니 데이터 초과 사용에 따른 비용을 고스란히 지불하고 계셨다. 누구를 위한 쿠폰인가?


토요일에는 휴대폰 OS 및 앱 업데이트를 진행하고 불필요한 앱을 정리해드렸다.
앱을 정리하면서 아버지께서 자동차 보험료 할인을 위해 휴대폰으로 사진을 촬영해서 업로드를 해야 하는데 도대체 업로드하는 방법을 모르겠다고 하신다. 해당 앱을 실행해서 살펴보니 IT서비스 기획자인 나도 도대체 어떻게 사진을 업로드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더라. 이리저리 한참을 살펴보다 이상하다 싶어 내 휴대폰에 깔려있는 동일 앱을 실행해보았다. 맙소사! 
아버지가 노안 때문에 단말기의 글자 크기를 '매우 크게'로 놓고 사용하신다. 그러다 보니 해당 폰트 사이즈를 대응하지 못한 앱들의 경우, 조금씩 UI가 깨지곤 하는데 해당 보험사 앱의 경우, 폰트 사이즈가 보통인 경우에 [업로드] 버튼이 스크롤 없이도 표시돼 문제가 되지 않는데 폰트 사이즈를 키운 경우에는 상단 안내 메시지가 커지면서 [업로드] 버튼이 화면 밖으로 밀리는데 스크롤 처리가 되지 않아 발생한 문제였다. 결국 단말기 폰트 사이즈를 줄여서 사진을 업로드했다.

 


일요일에는 외할머니를 뵙기 위해 외할머니를 모시고 있는 이모부 댁을 방문했다.
내가 IT업종에 일하고 있는 것을 아시는 두분도 내가 앉자마자 이런저런 문제들이 있다며 휴대폰을 들이미신다. 일단 휴대폰을 받으면 OS 및 앱을 모두 업데이트하고 문제 해결을 시작하는데 이모 휴대폰의 경우에는 업데이트를 하려고 하니 저장 공간 부족 알럿이 떴다. 저장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살펴보니 사진이 너무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 구글 포토를 깔고 동기화를 시켜드렸다. 사용법과 관련해서 한참을 설명해드리고 동기화가 완료되면 폰에서 사진을 모두 삭제하라고 알려드렸는데 과연 잘하셨을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잊으셨으리라!

그리고 이모부의 경우에는 통신비가 너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생활 형편이 좋지도 않은데 통신비가 많이 나온다고 이모가 하도 구박을 해 지난달엔 전화를 받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7만 원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Wi-Fi가 잘 연결되어 있는지 살펴봤는데 속도가 복장이 터질 정도로 느린 것 말고는 문제가 없어 통신사 앱에 들어가 봤는데 고작 300MB 정도밖에 사용하지 않았더라. 이상하다 싶어 상세 명세서를 살펴봤는데 요금제는 4만 원 대 요금제에 단말기 할부금으로 1만 원 정도 나가고 있는데 부가서비스로 2만 원 정도가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뭐지?
그래서 부가서비스 내역을 살펴봤는데 Wavve와 FLO 구독료로 1만 4천 원 정도가 나가고 있었다. 이모부에게 물어봤는데 이모부는 그것이 무슨 서비스 인지도 모르고 휴대폰에 해당 앱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좌초 지종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휴대폰 개통 시에 대리점에서 멋모르는 노인이 개통을 하니 부가 서비스를 마구 가입시켜놓은 것 같다. 그렇게 1년 동안 이모부는 보지도 듣지도 않는 Wavve와 FLO 구독료로 매달 1만 4천 원 씩을 지불하고 계셨고 통신비를 아껴보시겠다고 데이터도 거의 쓰지 않으셨는데 비싼 요금제에 가입되어 쓸모없이 고정비를 지출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두 부가서비스를 해지하고 요금제를 실버 요금제로 변경해드렸다. 그렇게 매달 2만 5천 원 이상을 절약해 드렸다.

 

국내 No.1 통신사인데 서비스는...


좋은 UI와 UX를 제공하기 위해 항상 고민하기 마련인 기획자 입장에서 요 며칠 사이 겪은 일들을 생각해보면 국내 최대 통신사인 SKT가 보여준 UX는 정말 최악이었다. 사용자에게 좋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긴 커녕 오히려 호구가 된 경험을 제공했으니 말이다.
최근 넷플릭스는 1년 이상 스트리밍이 발생하지 않은 계정을 대상으로 자동 결제를 취소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발표를 했는데 왜 국내에서 넷플릭스는 갈수록 성장하는데 반해 Wavve는 사용자가 점차 감소하는지 이해가 된다. 
SKT도 충분히 사용자 정보를 바탕으로 사용량에 따라 합리적인 요금제를 추천하고 사용하지 않는 부가서비스에 대해서는 자동 결제 취소가 가능할 텐데 좋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하며 경쟁력을 높이고 부가 가치를 높여나갔으면 좋겠다. 어떻게든 수익률만 높이려는 마인드와 자세로는 독과점인 통신 서비스 시장에서는 어떻게든 성장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사용자 선택지도 많고 글로벌 경쟁을 해야 하는 IT서비스 시장에서는 경쟁력이 없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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