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인가?
이젠 면접자로서 면접 볼 일은 별로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최근 면접관이 아닌 면접자로서 다수의 면접을 봤다.
이전 회사의 특성과 지리적 위치, 그리고 두문불출하는 개인적인 성향 탓에 국내 IT업계 사람들을 자주 만나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여러 회사의 사람들을 만나보고 그 회사의 철학과 비전, 서비스 전략, 조직문화, 사용하는 업무툴 등을 알아보며 공부하기 위해 일부러 많은 회사의 면접을 보려고 노력했다.
그 회사들에는 아까운 시간을 뺏은 것 같아 진심으로 미안하지만 회사와 서비스에 대한 사전 공부나 정보도 없이 면접을 보러 가고 나중엔 합격하여 입사를 확정한 회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이때가 아니면 또 여러 회사를 만나볼 일이 없을테니 기회와 시간이 있을 때 실컷 만나보자는 심산으로 말이다.
그래서 한국적인 면접자가 아니라서 몇몇 분들은 면접을 보면서 불쾌하셨을 수도 있겠다.
갑-을 관계가 아닌 대등한 관계에서 면접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거침없이 하고 회사의 철학과 비전, 전략 등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으며 지적질까지 하고 앉아있으니 말이다.
불쾌하셨다면 정말 죄송하다.
그런데 나 또한 오랜만에 구직자로서 면접을 보다 보니 구직자로서 참 답답했다.
우선 면접을 본 회사 중에서 채용 매니저를 두고 채용 프로세스를 잘 갖춘 회사는 토스 뿐이었다.
배민과 함께 가장 가고 싶었던 회사였는데 아쉽게도 프리 미팅(면접 전 채용 매니저를 통해서 간단하게 fit을 보는 면접이었다.)에서 미끄러졌다. 그나마 프리 미팅에서 떨어져 능력이 아닌 Fit이 맞지 않아 떨어졌나 보다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있다. 여하튼 면접을 보면서 왜 토스가 모두가 정부 규제와 금융 카르텔 때문에 성공하지 못할거라 이야기하던 핀테크 특히 송금시장에서 저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는지 채용 프로세스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능력있고 Fit이 맞는 사람을 채용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큰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면접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면접은 별 기대없이 방문했던 이음 소시어스와 난 이곳을 쓰지도 않았는데 쓰지도 않았던 회사에서 계열사를 통해 내 이력서를 전달 받아 면접을 보고 싶다던 처음 듣는 제이티넷이라는 회사였다.
그 외에는 제대로된 채용 프로세스나 면접 평가표도 없이 능력을 검증하기 보단 그냥 면접관의 형편없는 질문에 대한 답변과 개인적인 느낌과 감정으로 채용을 결정하는 프로세스였다.
그러니 그들이 볼 땐 내가 나이는 많고 연봉만 높은 건방진 조직부적응자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면접을 잘 한 회사야 사명을 거론할 수는 있지만 그 외의 회사는 굳이 사명까진 언급할 필요가 없으니 사명은 쓰지 않겠다.
면접을 보는데 한 회사는 앉자마자 1분 자기소개를 시킨다.
아직도 이런 올드한 면접 방식을 고수하는 기업이 있다니.
이 회사도 여러 이유로 날 채용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나 또한 면접을 보는 내내 이 회사는 들어갈 생각도 없었고 사실 짜증났다.
그리고 제발 이력서는 한번이라도 살펴보고 들어와라!
허겁지겁 들어와서 면접자를 앞에 앉혀놓고 그때서야 이력서를 대충 훑어보는 건 면접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냐?
이음 소시어스와 제이티넷은 면접을 보는데 면접관이 먼저 회사의 상황과 운영하는 서비스, 내가 입사를 하게 되면 어떠한 업무를 맡게 되고 회사가 기대하는 역량은 무엇인지 자세하게 소개를 해준다.
게다가 이음 소시어스는 회사의 장점과 단점까지도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면접을 시작하더라.
사실 전자의 회사에 비해 후자의 회사들이 매출이나 인력 등을 비교해도 훨씬 큰 회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합격하여 입사를 결정한 회사가 있었기에 후자의 회사들에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공부하는 셈치고 방문했는데 면접을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들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 회사에 대해서 자세하게 찾아봤다.
더 좋은 조건으로 이미 합격한 상태였고 더 크고 인지도 높은 회사들의 면접이 줄줄이 잡혀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 지하철에서 그 회사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찾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입사를 떠나 그 회사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 후배들을 만나게 되면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반복했다.
회사가 좋은 인재를 채용하고 싶다면 좋은 면접관이 면접을 볼 수 있게 면접관의 자질이나 역량부터 점검해보길 바란다.
면접관의 수준에 맞는 사람들이 그 회사에 입사하게 될테니 말이다.
수준 낮은 면접관으로 구직자들이 회사를 두고두고 욕하게 만들거나 그저 그런 사람으로 회사를 가득 채우기 싫다면 말이다.
최근 무한도전 '면접의 신' 편에서 무한도전 멤버들이 넥슨과 배민, 해태제과에 면접을 보는게 방송됐다.
넥슨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올드하게 앉자마자 자기소개를 시키더라.
배민은 뻔한 자기소개를 시키지도 않고 질문도 회사의 특성에 맞는 참신한 질문을 많이 해서 넥슨보단 배민의 면접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나온 해태제과의 면접을 보니 그나마 내가 IT업종에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행복했다. 이번 이직을 하면서 13번의 면접을 봤는데 그 어떠한 면접도 해태제과의 면접보단 좋았던 것 같으니 말이다.
결론은 구직자 탓만 하지 말고 면접 프로세스 및 면접관의 자질이나 역량부터 점검해보길 바란다.
어째 국내 면접 프로세스는 상위와 하위 기업의 차이가 더 극명하게 벌어지면서 하위 기업은 갈수록 형편 없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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