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의 다섯째 날이 밝았다.
호텔에서 일어나자마자 조식을 먹고 어제 휴관이라 구경하지 못한 러시아박물관을 향했다. 박물관 근처에서 습관처럼 모닝커피 한잔을 마시고 박물관을 둘러보았는데 예르미타시 박물관에 비해 작고 수장량은 적었으며 특히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지원하지 않아 이 박물관에 올 바에는 차라리 그 시간을 예르미타시 박물관에 투자하는 편이 나았을 것 같았다.
게다가 예르미타시는 박물관보단 미술관이라고 불리는데 미술품 이외의 소장품도 많기 때문에 오히려 박물관에 가깝고 이 러시아박물관은 박물관이라고 불리지만 미술품 위주라서 오히려 미술관이라고 불리는게 맞을 듯 싶다.
박물관을 구경하고 그 옆에 위치한 성미셀 캐슬을 스치듯 지나 여름정원에 도착해 휴식을 취했다.
어제 무리한 탓인지 발바닥엔 불이 난 듯 싶었고 다리는 감각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상트의 날씨가 이렇게 사기스럽게도 좋다보니 공원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너무 행복하다보니 무작정 한달 정도 상트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도시도 예쁜데 이렇게 날씨까지 좋으면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거야?
그래도 상트에서의 이틀은 좀 빡쎄게 구경하고 내일 모스크바에 도착해 하루는 푹 쉴 계획이었기 때문에 나 스스로와 친구를 좀 몰아부쳤다.
여름정원을 구경하고 다리를 건너 피터앤폴요새에 갔다.
일단 점심을 먹기 위해 인터넷에서 찾아본 식당, KORYUSHKA로 향했다.
식당은 가격이 좀 있었지만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바라보는 네바강과 강변의 풍경이 너무 아름답고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멋져 꼭 한번 방문해 보길 바란다. 가서 커피만 한잔 마셔도 괜찮으니까...
점심을 먹고 피터앤폴요새를 구경하는데 성당과 감옥을 관람하기 위해 600루블을 썼는데 친구와 둘이서 괜히 왔다고 서로 볼멘소리만 했다. 그냥 주변 경치만 구경하고 돌아갔다면 만족도가 더 높지 않았을까 싶다.
성당엔 딱히 볼만한 것 없이 바닥에 왕족들의 석관들만 즐비해 있었고 감옥은 18세기 지어진 것이라는데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원룸보다 큰데다 침대와 책상, 세면대 등이 있을 정도로 시설이 좋았다. 주로 정치범들이 갇혀있었던 것 같은데 18세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시설이 좋았다면 러시아 사람들에게 우리나라 서대문형무소를 보여줘야할 것 같다.
볼 건 그다지 없고 다리는 아파 대충 둘러보고 호텔에 돌아가기 위해 아스트랄 등대를 거쳐 드로비초비 다리를 건너는데 네바 강에 왠 러시아 구축함 한대가 떠있고 그 뒤로 잠수함이 수면으로 살짝 올라와 있는게 아닌가. 그리고 건너편 강변에는 국방생 차량들 수십대가 세워져있었다.
5월 9일이 러시아 전승기념일이라서 큰 퍼레이드를 진행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전 준비를 하나보다 하고 지나가는데 궁전광장 일대에 수백대의 전차와 장갑차, 곡사포, 장사포, 미사일을 탑재한 차량들이 즐비하게 주차되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
그렇게 길거리 러시아 무기 박물관을 공짜로 관람하고 내일 모스크바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맥주 한잔을 마시고 일찍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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