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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tup

기업 교육의 실종과 사교육 열풍

by 세균무기 2025. 3. 19.

불과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인재를 육성하고 배출한다는 ‘인재사관학교’라는 표현을 주변에서 흔히 보고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인재사관학교의 역할을 담당하며 많은 인재를 육성하고 배출하는 회사들은 인재 유출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면서도, 가끔은 이를 광고나 마케팅의 소재로 활용하기도 했다. 또한, 인재사관학교 역할을 하는 회사에 재직했거나 재직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경력을 뿌듯하게 생각하며 자랑하곤 했다. 하긴, 이러한 회사들이 삼성, IBM, 네이버, 옥션 등 해당 도메인에서 1, 2위를 차지하는 누구나 알 만한 회사들이었으니 자랑할 만도 했다.

2009년 11월에 KT를 통해 국내에 아이폰이 최초 출시되면서 스마트폰이 빠르게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규모가 작고 리소스도 부족한 스타트업들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이들은 간단한 계산기, 카메라, 게임 앱 등을 앱스토어에 출시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를 지켜본 수많은 개발자들이 회사를 떠나 창업을 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스타트업 전성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앱스토어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웹사이트를 통해 서비스를 제공해야 했다. 그런데 이미 웹에는 여러 경쟁사들과 서비스들이 존재했고, 넓은 화면에서 경쟁력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리소스가 필요했다. 그러나 앱스토어는 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어라는 언어적 장벽 때문에 웹사이트에서 제공하던 익숙한 서비스조차 없었다. 게다가 스마트폰이라는 이동형 단말기에 특화된 새로운 서비스들도 등장할 수 있었다. 때문에 앱스토어는 스타트업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이는 마치 19세기말, 미국의 골드러시를 떠올리게 한다. 유럽에서 신대륙으로 이주한 이주민들은 동부 해안을 중심으로 터를 잡았다. 미국인들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는 넓은 땅과 많은 인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민자들에게 저렴하게 서부의 땅을 나눠주며 유럽 일대에 아메리칸드림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마침 서부에서 많은 금광이 발견되면서 수많은 이주민들이 금을 찾아 동부에서 서부로 이주하는 골드러시 시대가 개막되었고 서부개척시대는 그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미 정부주도 하에 일확천금을 꿈꾸는 수많은 이주민들이 금을 찾아 마차에 몸을 싣고 약탈과 살인이 난무하는 약육강식의 무법천지, 서부로 골드러시를 하게 된 것이다. 

2010년대 초에 스타트업들이 앱스토어에 뛰어드는 모습은 마치 정부 주도 하에 서부로 골드러시를 떠나는 개척자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박근혜 정부의 스타트업을 육성하여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창조경제'라는 경제정책에 힘입어 많은 정부지원금과 투자금이 스타트업에 몰렸다. 그리고 “돈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인다.”라는 말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서부개척시대에 마차에 몸을 싣고 대륙을 횡단하던 개척자들처럼 스타트업 또한 현실은 열악했고 참담했다. 대다수 스타트업들이 규모도 작고 리소스도 부족했기 때문에 죽음의 계곡을 넘지 못하고 실패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인재사관학교’라는 단어는 금기시되는 표현이 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스타트업에서 ‘인재사관학교’라는 표현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게 스타트업은 과거에는 상식처럼 여겼던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인 교육훈련의 기능을 상실했다. ‘교육훈련’이 ‘종신고용’이란 단어처럼 과거의 유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나도 스타트업을 창업했었고 다수의 스타트업에 재직했기 때문에 스타트업의 상황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매일 살얼음판을 걸으며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스타트업이 직원의 교육훈련에 투자할 만큼 풍부한 리소스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내 리소스를 활용해 교육을 하자니 직원을 교육할 장소나 시간도 부족하고, 교육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도 드물다. 그래서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인 교육훈련을 위해 도서 구입비나 외부 교육 등을 지원해 줄 수밖에 없다는 현실도 충분히 이해된다.

그렇다면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인 교육훈련을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쉽게 대체하고 있으면서, 이를 사내 복지라고 포장하며 생색내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런데 이조차도 복지라며 이런저런 제한을 걸어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게 한다. 그렇게 직원들은 좋은 시설과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갖춘 기업들에서 성장하고 있을 경쟁자들에 비해 시간이 지날수록 실력과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대다수 스타트업은 실패하고 망한다. 

 

 

때문에 평생직장이나 종신고용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스타트업에서 직원의 교육훈련에 많은 비용을 투자하기보다는 다른 회사에서 경험과 역량을 쌓은 경력직을 채용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인 선택이 되었다. 기업의 경력직 선호 현상이 갈수록 높아지는 이유다. 그렇게 스타트업은 교육훈련의 기능을 사실상 상실하고 채용에만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제아무리 동일한 IT 산업이라지만, 회사의 문화나 일하는 방식, 도구, 프레임워크 등이 다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신규 채용한 인력이 이에 익숙해지며 제 실력을 발휘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스타트업에서 신규 채용한 인력에 대한 온보딩 과정이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IT 종사자들의 이직이 잦고 온보딩에도 리소스를 투입해야 하다 보니 전반적인 업무 생산성이 높을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리소스가 부족한 스타트업이 실력 있는 경력자를 채용하자니 요구하는 급여나 조건이 부담스러워 채용을 망설이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차선책으로 경력은 있는데 급여는 신입 수준인 중고 신입이나 실무 경험을 가진 신입을 채용하려고 한다. 그런데 중고 신입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신입이 회사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실무 경험을 어떻게 가지고 있을 수 있을까?

때문에 청년들이 실무 경험을 쌓기 위해 휴학을 하거나 방학 기간 동안 인턴십에 지원하며 회사의 온갖 잡무를 도맡아 하고 있다. 여러 회사에서 인턴을 채용하기 위해 이력서를 받아보거나 면접을 보다 보면 깜짝 놀라게 된다. 대다수가 서울 상위권 대학에 재학 중이고 휴학을 하거나 졸업을 유예하면서까지 수개의 인턴십을 했다. 인턴들로부터 최소 3개 이상의 인턴십 경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이력서에 인턴십 몇 줄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을까?

그런데 인턴들에게 지난 인턴십에서 어떤 업무를 했는지 물어보면, 실무 경험을 쌓기는커녕 문서 작성이나 수발 등의 단순 업무만 경험했다고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저렴한 비용으로 잡무를 도맡아 할 수 있는 똑똑한 청년들을 구한 데다 정부에서 청년인턴 채용 시 세금으로 인건비를 지원해 주는 등 각종 혜택까지 제공하니 인턴을 채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청년들은 취업을 위해 기업이 요구하는 실무 경험을 쌓는다고 여러 인턴십을 경험하며 졸업과 취업을 늦추고 있다. 그래서 신입사원들의 평균 연령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청년들이 결혼 적령기에 모은 돈이 없어 결국 결혼을 늦추거나 포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집값과 함께 인구 소멸을 앞당기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 청년들이 사회 진출을 빨리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오히려 갈수록 늦어지고 있으니 큰 문제다.

 

 

 

중고등 교육에서 불던 사교육 열풍이 직무 교육에까지 확산되었다.

 

 

과거 사내 교육이나 외부 위탁교육을 통해 직원을 교육훈련하며 인재를 육성하던 문화는 대기업의 전유물로 전락했다. 그리고 리소스가 부족한 스타트업에서는 교육훈련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에 이 역할을 사교육 시장이 대신하게 되었다. 그렇게 패스트캠퍼스, 스파르타코딩클럽, 인프런, 코드잇, 탈잉, 클래스101 등 다양한 형태의 직무 교육 기관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코로나 19로 인해 비대면 IT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IT 직군의 높은 수요와 맞물려 사교육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직무 교육 기관이 기업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인 교육훈련의 목적으로 신규 채용된 인력이나 임직원들의 부족한 직무 역량을 높이는데 활용되기보다는 구직자들이 취업 전에 실무 역량을 쌓는데 주로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취업준비생들이 이미 비싼 학비를 지불하고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쥐었음에도 불구하고 부트캠프 등의 커리큘럼에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천만 원이 넘는 비용을 또 지불하고 있다. 빨리 취업을 해서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하는데 실무 경험과 역량을 쌓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력서에 인턴십 몇 줄을 추가한 것도 모자라 이젠 비용과 시간까지 들여 직무 교육까지 받고 있는 것이다. 지방대를 나와 직무 교육 한번 받지 않고 고작 2번의 인턴십 경험을 가지고 졸업 전에 취업을 한 나로서는 이들의 취업을 위한 노력과 고군분투를 듣고 있으면 동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숙연해질 따름이다.

그런데 최근 직무 교육 기관이나 부트캠프 등과 관련하여 여러 문제와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가 끝나고 양적 긴축으로 인해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데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해 업무 효율성이 증가하며 신규 채용은 줄고 현직자들도 구조조정으로 권고사직을 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직무 교육 기관들이 무분별한 경쟁과 마케팅으로 수료자를 대량으로 배출했으니 이들의 취업률이 좋을 수가 없다. 
게다가 검증되지 않은 미자격 강사진, 직무 역량을 쌓기 어려운 부실한 커리큘럼, 운영 상의 관리 부실 등으로 인해 기업이나 현직자들 사이에서도 교육 기관들이 발급한 수료증으로는 직무 역량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학원 출신’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여가며 이들을 낮춰 부른다. 취업을 꿈꾸고 희망하며 시간을 쏟아붓고 비싼 수강료까지 지불했는데, 수료증은 인정을 못 받는다고 하고 취업은 안 되니 억울하고 화가 날 만도 하다. 그렇게 사회적 약자인 청년들이 기업 교육의 실종과 사교육 열풍의 최대 피해자가 되었다.


물론, 이러한 청년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해결하기 위해 몇몇 IT 기업들이 노력을 하기도 했다. 2013년 초에 네이버가 설립한 비인가 소프트웨어 아카데미인 ‘NHN NEXT’는 당시 한해 영업이익만 약 2천억 원을 벌어들이는 국내에서 가장 성공한 IT 기업이 사회 환원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의 큰 관심과 기대에도 불구하고 고작 2년밖에 운영되지 않고 졸속으로 해체되면서 IT 기업이 설립한 교육기관에 대해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최악의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NHN NEXT에 입학하기 위해 대학 입학을 포기하거나 회사를 퇴사하면서까지 지원한다는 이야기가 인터넷과 언론에서 나올 정도로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과 기대를 받았는데, 졸속으로 해체하며 사회적 기대와 신뢰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우아한형제들이 운영하는 개발자 교육 프로그램인 ‘우아한테크코스’가 NHN NEXT의 명맥을 이어받아 좋은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 그러나 2년 간의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했던 NHN NEXT와 비교해 10개월이라는 비교적 짧은 교육 기간으로 인해 사설 교육 기관에서 운영하는 부트캠프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여러 대학교와 사설 교육 기관들을 통해 기초 역량을 갖춘 많은 인력들을 배출하고 있다. 따라서 우아한테크코스가 대학교와 산학협력을 통해 실무·실습 중심의 커리큘럼을 공동 개발하고 이를 통해 실무 역량을 끌어올리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야 청년들이 4년이라는 대학생활을 알차게 보내면서 동시에 사회진출을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개발자 교육 프로그램만 운영하고 있는데 기획과 디자인, 데이터 직군 등의 교육 과정도 개설하여 함께 프로젝트 중심의 실무·실습 교육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이 외에도 애플과 포스텍이 제휴하여 운영 중인 ‘애플 디벨로퍼 아카데미 @포스텍’은 만 19세 이상이라면 전공이나 학력, 경력에 관계없이 누구나 지원이 가능하며, 9개월 간 전액 무료로 진행되는 것은 물론 매달 100만 원의 장학금까지 제공되고 있어 높은 지원율을 기록하고 있다. 다만, 포항에 위치한 포스텍 기숙사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지리적 제약이 있다.

 


바늘구멍 뚫기보다 어렵다는 대기업 취업은 안 되고, 스타트업은 실무 역량을 요구하며 경력직을 선호하다 보니 취업을 포기하고 그냥 쉬는 청년만 41만 명에 달하는 희망 없는 사회가 되었다. 어디 하나 기댈 곳 없는 청년들이 유튜버를 꿈꾸고, 인터넷에 올라오는 무자본 창업이라는 비정규직 단기 알바에 가까운 부수입 콘텐츠를 기웃거리거나, 코인이나 주식 등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행태를 그들만의 잘못이나 노력이 부족한 결과라고 비난하기에는 사회와 기성세대들의 잘못이 너무 큰 것 같다.
그런데 모두가 생존을 걱정하는 약육강식 각자도생의 시대에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사회적 약자인 청년들의 실업문제나 교육훈련에 관심을 가지거나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단지 정부의 포퓰리즘을 위한 대상이며, 언론과 미디어의 기사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초고령화 사회에서 청년들의 투표수가 고령자들보다 갈수록 적어지다 보니 정치와 정책이 고령자 중심으로 움직인다. 부동산 정책이나 국민연금 개정안만 놓고 봐도 사회와 기성세대가 청년들과 후세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다. 오직 자신의 부를 위한 착취의 대상일 뿐이다. 때문에 청년들은 하루빨리 해외로 탈출을 하거나 그나마 청년들이 주 소비자 집단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압박할 수 있는 IT 기업에 청년층을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도록 소비자 주권을 행사해야 한다. 그런데 청년들도 게임이나 연예에만 관심을 가지고 이들 기업에만 목소리를 낼 뿐이지 정작 중요한 사안에는 소극적이다.

 

 

사람의 중요성을 잃은 나라에 미래가 없듯, 인재의 중요성을 잃은 기업에도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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