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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tup

프로젝트 오너쉽을 잃다.

by 세균무기 2017. 2. 17.


설연휴 이후부터, 그러니까 2월 초부터 업무에 제대로 집중과 몰입을 하지 못하고 있다.
회사에 한명 있는 기획자이고 프로덕트 매니저(Product manager)이자 프로젝트 오너(Project owner)인데 중요한 시기에 일에 집중을 못하고 있다보니 창업멤버에 직급(사실 직급과 직책은 거부했다. 명함도 만들지 않았다.)도 높고 나이도 많다보니 동료들이 면전에 말은 못하겠지만 매우 답답하고 짜증날 듯 싶다.
물론 기획자가 천직이라고 이야기 할 정도로 이 일을 너무 좋아하고 평소 쉬는 날도 없이 일을 하는 워커홀릭인 사람인데 일에 집중을 못하고 있으니 나 또한 엄청 답답하고 짜증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일에 집중을 못한다고 해서 놀고 있냐면 또 그렇지도 않다.
최근 블로그에 포스팅이 늘어난 것처럼 기획 관련된 포스팅도 하고 책도 읽고 경쟁 서비스도 사용해보며 기획자로서 필요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즉 기획자로서 기획 업무에 염증을 느낀 것은 분명 아니다.
문제는 회사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업무에 집중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갑작스레 왜 이렇게 오너쉽을 잃었냐고? 
그래서 그 이야기(라 쓰고 푸념이라고 읽자.)를 해볼까 한다.


첫째, 거대한 프로젝트

일전에 한번 소개한 것처럼 나는 중국 2/3선 도시에 있는 오프라인 마트 체인들에 O4O 및 옴니채널을 도입하여 스마트매장을 구축하는 한국인 중심의 중국 IT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때문에 한국인에 의해 중국인을 위한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는데 중국 서비스를 기획하는 것도 만만치 않게 어려운데다 프로젝트의 규모가 한명의 기획자가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너무 거대하다.
이미 브로셔 수준의 3개의 웹사이트와 2종의 안드로이드/iOS 앱, 매장관리플랫폼을 개발하였고 현재 한종의 모바일웹과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이들 서비스의 기획서만해도 천장이 넘어간다.
지난 2년 동안 기획서만 그려놓고 진행되지 못하거나 개발은 하였으나 피봇으로 인해 운영이 중단된 서비스까지 다 합치면 기획서만 수천장이 될 듯 싶다.
그렇다보니 머리속에서 각 서비스들이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려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다. 가끔은 특정 기능이나 정책이 기억나지 않아 내가 그린 기획서인데도 불구하고 기획서를 찾아보는 웃픈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이젠 나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사이즈를 넘어선 것이다. 
프로젝트의 크고 작음을 떠나 완벽주의에 편집증도 있는 사람이 타인에 의한 위계와 위력도 아니고 자신의 역량 부족으로 인해 완벽함을 추구할 수 없을 때 느끼는 자괴감과 스트레스에 스스로 번아웃이 되어버렸다.

기획자 혼자서 감당하기엔 비즈니스 모델도 채널과 시스템도 너무 많다. OTL



둘째, 산더미 같은 업무

해야할 일은 산더미인데 기획자는 혼자다보니 처음에는 어떻게든 쌓여있는 To do list를 줄여보고자 밤늦게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일하며 노력하였으나 그래도 리스트가 줄지를 않자 어느순간 그날 그날 할 수 있는데까지만 하자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업무의 중요도를 판단해 중요도가 높은 업무부터 처리를 해야하는데 중요도가 높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치고 들어오는 경우가 너무 많다.
요 며칠 사이에는 백오피스를 개발하던 웹개발자들이 모바일웹을 개발하다보니 실제 구현된 앱과 모바일 기획서를 보며 개발을 하고 있어 자주 물어보러 오는데다 일정이 촉박하여 개발 중간에 작업물을 확인하고 테스트를 시작했어야 했는데 행사에서 필요한 PT를 만들고 수정하느라 꼬박 4일을 투자했다. 
다수의 서비스를 모두 이해하고 있어야 작성할 수 있는 PT다보니 기획자말곤 작성할 사람도 없어 결국 내가 작성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런 업무가 너무 많다.
기획자라는 역할 자체가 멀티태스킹을 요구할 수 밖에 없는 포지션이라지만 2년 동안 치이다보니 의도치 않게 피로감과 짜증을 느끼고 있다.


셋째 , 무리한 요청과 요구

프런트에 보이는 버튼 하나, 기능 하나를 바꾸는게 직접 기획과 개발을 하지 않는 사람 입장에서는 쉬워보일 수도 있겠지만 다수의 서비스가 복잡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경우에는 검토해야할 사항도 많고 때론 기능 하나를 수정하기 위해 여러 기능과 페이지를 함께 수정하거나 정책마저 변경해야 하는데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너무 쉽게 요구한다.
일정이나 정책 등의 이유로 수용할 수 없는 요청과 요구도 있는데 그것을 설득하고 때론 다투는 일이 잦아지다보니 이젠 나도 모르게 지치고 질려버렸는지 그냥 알겠다고 이야기해버린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동료들의 몫이 되고 일정이 늦어지는 등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넷째, 불편하고 피곤한 커뮤니케이션

지난 2년 동안 스타트업으로서 겪어서는 안 되는 내홍과 진통을 너무 많이 겪었다. 개발팀이 3차례 물갈이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다 보니 기획자로서 커뮤니케이션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기획자는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커뮤니케이션이 잦은 포지션인데 최근에는 커뮤이케이션 자체가 피곤해 디자이너와 퍼블리셔, 개발자들이 직접 찾아오지 찾아가지 않았고 커뮤니케이션을 길게 하고 싶지도 않아 동료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줬다.
그런데 이런 마음을 동료들도 느꼈는지 어느 순간부터 서로 업무상 대화가 줄었고 업무상 대화가 줄어드니 업무를 포함한 일상에서의 대화조차 불편하고 피곤해져 버렸다.


결국 기획자로서 프로젝트 오너쉽을 잃었다.
빨리 회복해보려고 주말에 푹 쉬어보기도 하고 영화를 자주 보기도 하고 책만 읽기도 하며 이짓저짓을 다 해봤지만 쉽게 회복이 되지 않고 있다.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뜬다고 되뇌이며 잠을 청하지만 출근해 모니터 앞에만 앉으면 똑같은 나날이 벌써 이주를 넘어가고 있다.
창업도 해봤고 외국에서도 일해봤으며 여러 스타트업에서 일해봤지만 이런 느낌과 감정이 처음이다보니 난감하고 당황스럽다. 이런게 진짜 번아웃인건가?
어떻하지? 어떻게 해야할까?
오늘도 이 괴로운 생각만 머리 속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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