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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나의 고향, 전주는 추억으로만 남다.

by 세균무기 2016. 8. 8.


지난 주말을 맞아 한국에 장기출장을 나와있는 중국인 동료와 함께 오랜만에 고향인 전주를 찾았다.

전주는 내가 태어나서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19년, 반평생을 살아온 곳이다.

게다가 아직까지 전주 한옥마을에 19년을 살았던 한옥 한채가 요양병원에 계시는 할머니가 돌아오기만을 기약없이 기다리며 수북한 먼지와 함께 시간을 멈춘채 세간을 힘겹게 지켜오고 있는 나의 추억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때문에 북경에서 온 동료에게 전통과 맛의 고장인 전주를 자랑하며 꼭 한번 데려가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매번 이런저런 이유로 연기를 하다 이번에 무리하게 강행한 여행이었다.

중국인 동료도 사전에 전주에 대해서 이것저것 검색을 해보고 지갑을 두둑하게 채워온 것을 보면 내심 기대를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본론부터 이야기를 하자면, 이번 전주 여행은 실망 그 자체였다.

한옥마을은 정체불명의 음식들을 파는 한옥지붕을 얹혀놓은 혼잡하고 어지러운 거대한 식당가로 변해있었고 전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중국인 동료도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이 번잡한 식당가에서 볼만한 것이 없던지 그냥 시원한거나 먹자며 이 자리를 빨리 빠져나가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눈치였다.

어렸을 때 뛰놀던 한옥마을의 좁디좁은 골목들은 이미 넓은 도로가 뚫려 정체모를 상가들이 빼곡히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 어디에서도 옛 향수를 느끼긴 어려웠다.

고작해야 경기전과 전동성당만이 이곳이 니가 살던 한옥마을이였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줬다.


그리고 천안문과 자금성, 이화원, 천단공원 등 거대하고 웅장하며 잘 보존된 문화재를 보고 자란 중국인 동료에게 경기전만으로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보고 느끼기엔 역부족이 아니었나 싶다.

단지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무리들을 보며 '흥미롭다.'라는 표현을 한 것이 전부였다. 그도 어린 남자애들이 여성 한복을 입고 돌아다녀서 그랬던게 아닌가 싶고.


결국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어머니 손에 이끌려 드나들었던, 즉 한 자리에서 30년 이상을 버텨온 분식집 베테랑에서 콩국수 한 그릇을 먹으며 아쉽게나마 머리속에서 잊혀져가는 전통과 맛을 떠올리고는 급하게 한옥마을을 빠져나왔다. 

안타깝게도 앞으론 '전통과 맛의 고장, 전주'라며 외국인 동료를 데리고 전주를 방문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나저나 외국인 관광객은 몇 명 보지도 못했던 것 같네.


내 고향 전주는 그렇게 추억으로만 남았다.



--- 개인적 감상 ---


내가 6년을 다녔던 전주중앙초등학교는 경기전에 그 자리를 내주고 그 옆에 축구장보다 작은 크기로 이전을 하였다. 내가 다닐 땐 축구장만한 큰 운동장과 함께 소운동장도 있었는데...

경기전은 입장료 없이 오고갔는데 어느새 입장료를 3천원씩이나 받고 있었다. (볼 것도 없는데 말이지...) 전주시민의 경우 1천원이라는데 난 오래전 서울시민이 되었으니 혜택이 없고 아직 전주시민으로 남아있는 여동생에게 이 소식을 전하니 여동생은 '전주시민으로 남아있어서 좋은 건 하나 있네.'라며 애써 위안을 했다.

중고등학교 때 성심여고 학생들이 등하교를 할 때면 수많은 여학생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고개를 떨구고 지나다니던 퇴계로는 어느새 거대한 식당가로 변해 있었다.

그 식당가에는 사실 몇몇 음식점 밖에 없었는데 성심여고 때문인지 분식점 위주였고 그나마 세월을 묵묵히 견뎌낸 건 베테랑 하나 뿐이다. 그 베테랑에서 가장 좋아하던 팥빙수는 메뉴에서 사라졌고 칼국수와 콩국수는 그릇이 작아졌다.

그렇게 수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던 한 권의 앨범 같은 전동, 풍남동, 교동 일대는 이미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거대한 현대식 상가만 들어찼다.


다행히 좋아하던 여학생 때문에 잠시 오고가던 전동성당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초중고 시절을 잠시나마 떠올릴 수 있었던 건 좋았다.


그런데 세상이 갈수록 빠르게 변화하는데 요즘의 아이들은 중년이 되어 추억할거리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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