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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ning

기획은 규칙과 패턴이다.

by 세균무기 2018. 8. 13.

후배 기획자들이 어떻게 하면 서비스 기획을 잘할 수 있냐고 묻곤 하는데 그때마다 난 기획엔 왕도가 없다고 답변한다. 게다가 사실 나도 부족하다 느끼고 잘 못 하는데 기획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나도 좀 알고 싶다.

"기획을 잘하고 싶어요! 그러니 제발 좀 알려주세요!!!"


기획에 왕도가 없다는 이야기는 기획엔 정답이 없다는 이야기다.
물론 정답이 없다고 하여 좋은 기획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내가 한 기획이 최고의 기획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왕성한 호기심을 가지고 꾸준히 공부하며 타인의 기획서와 그 결과물을 찾아보고 여러 서비스를 사용해 보며 동료나 사용자들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하튼 기획에 왕도가 없다고 하여 좋은 기획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리고 왕도는 없다지만 일정한 규칙과 패턴은 존재한다. 물론 요즘 기획이 플랫폼 종속적인 기획을 할 수밖에 없다 보니 구글과 애플의 디자인 가이드라인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게 사실이지만 새로운 UI와 UX가 나오고 이 UI와 UX가 기존의 규칙과 패턴보다 편하고 좋다는 인식이 기획자들 사이에 확산되면, 즉 기획자들끼리 공감하고 공유하면 암묵적으로 일정한 기획의 규칙과 패턴으로 정착하여 여러 서비스에 적용되고 사용자들은 이 규칙과 패턴에 익숙해지게 된다.
그리고 익숙해진 규칙과 패턴하고 다른 더 편하고 새로운 UI와 UX가 등장하면 우린 멋있다고 감탄하고 그 반대인 경우에는 형편없는 기획이라며 비판을 한다.

사용자들에게 익숙해진 UI와 UX를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해한다면 새로운 규칙과 패턴을 만들어 정착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다음이 홈메인을 리뉴얼하면서 여러 서브 메뉴를 탭 UI로 구성했는데 해당 서브 메인으로 이동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더보기' 버튼이 보이지 않았다. 탭에서 해당 메뉴의 글을 클릭해서 들어간 다음 서브 메인으로 이동하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 당혹스러웠는데 알고 보니 탭을 한번 클릭하면 탭 이동이 되는데 두 번 클릭하면 해당 서브 메인으로 이동을 하는 것이다. 이런 기획은 탭 UI와 관련해 업계가 형성해 온 규칙과 패턴을 깬 건데 사용자들에게 혼동과 불편함을 주는 매우 형편없는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티스토리 서브 메인으로 진입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난 신입 기획자들이 좋은 사수 밑에서 규칙과 패턴을 자연스럽게 학습하고 이런 기본기를 갖춘 다음 더 좋은 UI와 UX를 고민할 때 정말 좋은 기획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본기도 없이 멋있다고 생각하는 서비스를 단순 모방하기 시작하면 좋은 기획은커녕 통일성이 없거나, UI는 멋있는데 UX가 불편하거나, 개발이 어려워 기획이나 디자인을 엎어야 하거나, 프런트와 백엔드가 싱크가 맞지 않는 등 오히려 프로젝트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획을 하다 보면 기획자가 아닌 상사나 동료들이 기획에 참여하거나 참견을 하는 경우가 있다.
기획에 왕도가 없다지만 단순히 주관적 기준에 UI가 예쁘고 멋있거나 자신이 편하다고 생각하여 기획에 반영하려고 하거나 기획자도 단순히 그렇게 기획을 할 것이라 생각하며 이렇게 저렇게 바꾸자고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기획이 매우 복잡한 통섭의 영역이다 보니 단순히 예쁘고 편한 UI와 UX가 좋은 기획이 아닐 때도 있다.
최우선으로 사용자를 고려하여 기획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때론 제휴사와 거래처 등의 외부적인 요인이나 경영진의 의도와 동료들의 실력, 회사의 자원이나 리소스, 타이밍과 시간, 개발 가능 여부, 프런트와 백엔드의 연결성, 법과 정부 정책, 서비스 정책, 번역 이슈 등 수많은 요인들을 고려하여 기획하고 설계를 하다 보면 기획자 자신의 의도와도 다르게 기획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게 더 예쁘거나 편하다고 바꾸자고 한다면, 그냥 당신이 기획을 하세요!

기획에 왕도는 없다. 다만, 규칙과 패턴만 있을 뿐이다.
기획자는 자신이 직면한 현재 상황에서 정답을 맞히는 사람이 아니라 사용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는 사람이다.
때문에 최초 기획 시에는 최선의 기획을 위해 자주 보고 사용하며 규칙과 패턴을 익히고 기획의 감을 높여야 하고 서비스 오픈 이후에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A/B 테스트를 진행하며 자신의 가설에 정당성과 근거를 부여하며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규칙과 패턴에 익숙해지고 기획에 자신이 붙으면 이제 익숙한 규칙과 패턴을 깨는 노력을 하면 된다.

 


 

이 글이 2018년 8월 13일에 작성되었는데 2년이 지난 2020년 9월, O'REILLY에서 출판된 '존 야블론스키'의 저서 'UX/UI의 10가지 심리학 법칙'에서 동일한 이야기를 '제이콥의 법칙(Jakob’s Law)'으로 소개하고 있다.


제이콥의 법칙은 사용성 전문가인 제이콥 닐슨이 2000년에 제창하였으며, 사용자는 다른 웹사이트나 앱을 통해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디자인에 대한 기대치를 형성한다는 법칙이다. 그리고 이는 멘탈 모델(Mental model)이라고 알려진 심리학 개념과도 연관이 있다고 한다. 멘탈 모델이란, 우리가 어떤 시스템에 관해, 특히 그 시스템의 작동 방식에 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바를 가리키는데, 디자인이 멘탈 모델과 어긋나면 사용자가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를 인지하는 방식이나 이해하는 속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익숙한 제품이 갑자기 변할 때 멘탈 모델 부조화라고 일컫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2018년 11월, 네이버가 홈 화면에 그린닷을 적용하자 사용자들의 반발이 거셌다. 이는 멘탈 모델 부조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제이콥의 법칙(Jakob’s Law)은 심리학적 이론과 연구에서 여러 근거를 찾을 수 있다.


1. 스키마 이론(Schema Theory)
• 설명: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를 처리할 때 기존의 경험과 지식(스키마; Schema)을 바탕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 관련 연구: 바틀렛(Frederic Bartlett, 1932)은 사람들이 기억을 회상할 때 기존의 스키마를 기반으로 재구성한다는 연구를 했다. 이는 사람들이 새로운 UI를 접할 때도 기존의 웹사이트 경험을 바탕으로 학습한다는 점과 연결된다.

2. 인지적 경제성 원칙(Cognitive Economy Principle)
• 설명: 인간의 두뇌는 인지적 자원을 절약하기 위해 이미 익숙한 패턴을 따르려 한다는 것이다.
• 관련 연구: 체노프스키(Chomsky, 1965)의 언어 연구에서도 사람들이 가능한 한 간단한 규칙을 선호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3. 휴리스틱 처리 모델(Heuristic Processing Model)
• 설명: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빠른 결정을 내릴 때 경험적으로 익숙한 패턴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 관련 연구: 티버스키 & 카너먼(Tversky & Kahneman, 1974)의 휴리스틱 연구에서 사람들은 익숙한 것과 친숙한 것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했다.

4. 정신적 모형(Mental Model)과 사용자 기대(Expectation)
• 설명: 사용자는 특정 인터페이스를 볼 때 이미 예상되는 작동 방식이 있으며, 기대와 다르면 혼란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 관련 연구: 존슨 & 헨더슨(Johnson & Henderson, 2002)의 연구에서 사용자의 멘탈 모델과 UI 디자인이 일치할 때 학습 속도가 증가하고 사용자 만족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5. 인지 부하 이론(Cognitive Load Theory)
• 설명: 인간의 단기 기억(working memory)은 용량이 제한적이며, 새로운 패턴을 학습하는 데 높은 인지 부하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 관련 연구: 스웨일러(Sweller, 1988)의 연구에 따르면, 익숙한 패턴을 따르는 것이 학습과 정보 처리를 더 효율적으로 만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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