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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영화 '은교' - 늙음은 벌이 아니다.

by 세균무기 2012. 5. 7.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에 대한 상이 아니듯이, 

나의 늙음 또한 나의 잘못에 대한 벌이 아니다. - 이적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나 감상평을 블로깅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영화 '은교'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보니 블로깅을 하고 넘어간다.



나이


지극히 한국적인 영화인 것 같다. 지나친 비약이나 과장일진 모르겠지만 나이에 대해서 민감하게 생각하고 반응하는 한국의 상황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처음 외국에서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외국인 팀원이나 친구들에게 서열을 정하기 위해서였건 연장자를 존중하기 위해서였건 습관적으로 나이를 묻곤 하였다. 한국에서는 지레 당연한 절차이자 과정이기에 아무런 생각없이. 하지만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나의 질문에 당황하며 마지못해 답변을 하거나 위트있게 넘기며 답변을 회피하곤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지만 나이에 대한 질문은 그들에게 실례되는 질문이자 무례한 행동이었다. 초면에 엄청난 실수를 많이 저질렀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무려 1년 3개월을 함께 일했던 동료와 팀원들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밝힌 나이가 맞는지, 또 밝히지 않아서 끝까지 정확한 나이를 알지 못 했다. 고작 이력서를 통해서 생년월일을 본 몇몇 팀원들만 정확한 나이를 간접적으로 알고 있을 뿐.

그렇다. 외국인들은 나이를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직장 내에서는 직책과 능력이 중요하고, 연인이라면 사랑이라는 감정이 중요하고, 클럽이나 술집에서 만난 사이라면 그 분위기에 취해 함께 어울리는 것이 중요하기에 모두가 친구일 뿐이다. 때문에 60살은 훌쩍 넘어보이는 백발의 할아버지가 노란색 원색의 바지에 체인을 걸치고 한손에는 맥주병을 들고서 클럽에서 젊은이들과 함께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외국에서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늙은 남자와 젊은 여자가 함께 손을 잡고 또는 팔짱을 끼고 가는 것을 보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편견과 선입견에 빠져 원조교제 또는 돈을 주고 젊은 동남아시아 여자와 국제결혼을 했다고 단정 지을 사람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나 또한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었을 때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물론 굳이 자세히 언급하진 않겠지만 해외 여행지에서 더 한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나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외국에서 큰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사랑해 연애를 하고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30살이 넘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물론 영화 '은교'에서는 서로 50살이 훌쩍 넘는 지나치게 큰 나이 차이지만.) 그리고 이상하고 불편한 시선으로 이들을 쳐다보지도 않을 뿐더러 이들 또한 남의 시선에 크게 신경쓰거나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은? 

글로벌을 외치지만 정작 글로벌은 없다!



간극


영화를 보다보니 어느 순간 박해일 역의 '이적요'에 감정이입을 했는지 아니면 평소 마음 속 깊이 느끼고 공감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적요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무 이른 나이에 철이 들어서 정신적 성숙에 더 이상의 발전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아직까지도 철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물론 후자가 맞겠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이 흐를수록 내 정신연령과 실제 나이, 그리고 나이에 따른 사회적인 기대치나 시선 사이의 간극이 갈수록 넓어지는 것을 느낀다. 

최근 십년지기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도 서로를 20대 초반의 정신 못차린 친구들 같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물론 그 친구들 중에는 결혼을 해서 두 자식을 둔 친구도 있었는데. 

난 아직 내가 3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현실에 현실감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이 간극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만약 내가 이적요와 같이 70대가 된다고 해도 내 마음은 40대, 아니 30대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몸은 70대지만 30대의 열정과 욕망에 욕심을 부릴지도.


그리고 죽음이 문 앞에 다다랐을 때 현실에 눈 뜨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부자건, 가난하건 정신적 의미의 해탈을 하지 않은 자라면 누구던 삶에 대한 후회를 남길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블로깅을 끝마치고 읽어보니 젊은 나이에 주제 넘는 글이 아닌가 싶네요.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가슴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세균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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