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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오락실의 진화

by 세균무기 2012. 1. 6.

- 삼촌이 막걸리 한잔을 걸치고 내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을 붙잡고 처음으로 데려간 옆에만 앉아있어도 시간이 멈춰버렸던 판타지 세상, 오락실.

- 오락실을 가기 위해 아버지의 호주머니를 뒤져 몇 천원씩 훔치다 보니 생긴 한 때의 도벽.

- 학원을 간다고 하곤 오락실에서 오락을 했는데 이를 거짓말하다 아버지에게 들통나 아끼던 자전거가 영화 ‘E.T’에서처럼 하늘을 날아올라 박살나버렸던 기억


이런 추억들이 나를 포함하여 30대 이상에게 어렴풋한 향수를 자극하는 조그만한 동네 오락실의 추억이 아닐까!! 

이랬던 오락실이 스타크래프트의 등장과 이로 인한 PC방의 성장, 온라인 게임 산업의 발전으로 쇠퇴를 거듭하여 동네에서 하나 둘 자취를 감추더니 이제는 대형 쇼핑몰에서나 어렵게 찾아볼 수 있는 퇴행산업, 하나의 역사적 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갤로그, 라이덴, 버블보블, 스트리트파이터 등을 줄을 서서 즐겨야 했던 허름하고 조그만한 동네 오락실이 대형 오락실로 탈바꿈하고 자동차, 총싸움, 댄스, 농구 게임을 비롯하여 캡슐형 노래방 등의 설치로 단순한 오락실을 넘어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성장하려고 노력하였으나 PC방과 온라인 게임에 밀려 힘을 못 쓰는 것 같다.
하지만 국내 시장과는 달리 필리핀에서는 PC방과 온라인 게임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거대 프랜차이즈 형태(대형 체인화)로 발전하며 카드/코인등의 결제수단 도입, 티켓으로 경품을 교환할 수 있는 사행성 요소 적용, 프랜차이즈를 연결하는 다양한 네트워크 게임의 도입 등으로 국내 오락실과는 달리 당당하게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그럼 필리핀의 오락실은 어떻게 발전해 나가고 있을까?

1. 대형 체인화
엔터테인먼트 문화가 Mall 문화에 귀속되어 있는 필리핀에서 대부분의 몰에는 오락실이 입점해 있으며 필리핀에서 가장 크다는 Mall of Asia (MOA)에는 내가 본 오락실만해도 무려 6개의 대형 오락실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대형 오락실이 필리핀 3대 오락실 체인인 TIMEZONE, WORLD OF FUN, TOM’S WORLD이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이 3개 체인점이 아닌 오락실을 본 경험이 없다고 할 정도로 적으며 이들 체인의 규모가 엄청난 자본이 필요해 보일 만큼 어마어마하다. 하물며 오락실 안에 캡슐형도 아닌 방으로 된 노래방부터 아이들용 회전목마, 대관람차, 바이킹까지 설치되어 있는 곳도 있으니 말이다.

오락실인지, 사행성 오락실인지, 놀이공원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마닐라 '로빈슨 갤러리아' 내 한 오락실

2. 자체 결제수단
필리핀 오락실 시장 1, 3위 업체인 Timezone과 Tom’s world의 경우 카드/코인 형태의 자체 결제수단을 도입하고 있다. (World of fun은 경험이 없어 제외)
 

- Timezone의 경우 현금을 주면 Powercard라는 카드에 충전시켜 주는데 이때 충전하는 금액에 따라 서비스 금액(100페소를 주면 120페소를 충전시켜 줌)을 넣어줄 뿐만 아니라 VIP인 경우 게임기마다 약간의 할인(17페소짜리 게임의 경우 16페소 결제)을 적용해준다. 모든 오락기기에는 카드리더기가 장착되어 있어 카드리더기에 카드를 긁어 게임을 이용하게 되어 있으며 추후 이야기할 경품 교환 수단인 ‘티켓’이라는 것도 카드에 입력해주기 때문에 간단하게 카드를 통해서 게임도 즐기고 경품 교환도 할 수 있다.


- Tom’s world의 경우에는 Timezone보다는 조금 불편하게 매장별 자체 코인과 카드 2가지 형태를 제공하고 있으며 오락을 즐기는 데에는 자체 코인을 사용하고 경품을 교환할 수 있는 티켓만 카드에 충전을 시켜준다.

게임을 별로 즐겨하지 않는 내 지갑에도 잔액이 남아있는 Timezone과 Tom’s world 카드가 들어있는 것을 보면 Mall에 가서 영화를 예매했는데 시간이 조금 남거나 마땅히 할 일이 없으면 또 오락실에 가 있을 듯 싶다. 

3. 티켓을 통한 사행성 요소

티켓을 원하지 않던 원하던 간에 몇몇 게임을 즐기다 보면 게임 결과에 따라서 종이로된 티켓을 발급해주며 인형뽑기가 아닌 티켓뽑기, 사행성 티켓 전용 게임기 등을 통해서 티켓을 모을 수 있다. 이 티켓을 가지고 경품을 교환할 수 있는데 충전소의 유리로된 테이블과 벽면에는 작게는 수십장에서 수만장에 이르는 티켓으로 교환할 수 있는 다양한 상품들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오락실에 들어온 고객을 유혹한다. 사탕, 과자, 음료부터 각종 캐릭터 상품, 상품권, 식기류, 전자렌지, 자전거, 핸드폰에 이르기까지 생활에 유용한 상품들이 많다보니 이 티켓을 모으기 위해서 오는 어린 아이부터 백발을 휘날리는 노년층이 상당수다. 결국 국내의 사행업소처럼 게임과 경품에 중독된 사람들이 모여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는 곳이 필리핀 오락실인 것이다.

4. 다양한 게임기와 네트워크 게임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오락실 내에 자동차, 총싸움, 댄스, 농구, 볼링, 퀴즈게임, 각종 도박게임 등 생전 보지 못한 게임기가 수두룩하며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나라답게 방으로 이루어진 노래방이 갖추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용 회전목마, 대관람차, 바이킹 등의 각종 탈 것들도 설치되어 있어 마치 작은 놀이공원을 연상케 한다. 
게다가 현재는 Timezone의 경우이지만 온라인 게임의 특성을 적용한 다양한 네크워크 게임이 하나 둘 늘어가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한 게임을 예로 들면 자동차 게임의 경우 카드를 긁고 게임을 시작하면 오락기 상단에 장착된 카메라로 사용자의 사진을 찍어 자동차에 자신의 사진을 매칭시켜준다. 자동차 및 아이템 등을 선택하면 자신이 게임을 진행하고 있는 오락실의 동일한 여러 대의 게임기를 포함하여 네트워크로 연결된 타 체인점의 사용자들을 기다리게 되고 8명의 사용자가 차면 게임이 시작된다. 게임이 끝나면 패스워드 입력을 통해 게임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으며 등수에 따라 포인트를 누적하여 레벨업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차량을 업데이트할 수 있는 아이템 등을 구매할 수 있다. 온라인 자동차 게임을 오락실이라는 오프라인으로 그대로 옮겨놓은 것인데 그 오락을 즐기는 사용성이 집에서 즐기는 것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또한 기존에 설치되어 있던 퀴즈게임과 총싸움 게임을 네트워크로 연동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하니 앞으로 오락실에서 다양한 게임을 네트워크로 즐길 수 있을 듯 싶다.


이렇듯 국내에서는 사양산업으로 밀려나며 아날로그적 향수를 느끼게 하는 오락실이 필리핀에서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한 축을 이끌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욱 발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아케이드 오락실 산업의 메카인 일본과 다른 선진국에서는 오락실 산업이 어떨지 참으로 궁금하다. 


가슴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세균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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