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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안 된다 했고, 매번 실패를 경험했지만

by 세균무기 2019. 3. 19.

부제 : 그리고 여전히 실패를 경험하고 있지만...

나는 올해 마흔 살, 불혹이다.
마흔 살을 살며 많은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하였다.
특히 30대는 한 직장인으로서 커리어만 놓고 봐도 정말 다양한 도전과 실패의 연속이었다.
TV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이 파일럿 프로그램인 '무모한 도전'으로 시작해 2018년 3월, 종영하기까지 13년간 방송을 했다니 내 30대는 성공한 '무한도전'까진 아니더라도 '무한도전'과 함께 무모한 도전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이젠 성공한 무한도전을 찍을 만도 한데... ㅠㅠ)

한 서비스 기획자로서 한국은 물론 중국과 필리핀에서 커뮤니티, 블로그, SNS, 이커머스, O2O, 광고/마케팅 플랫폼, 암호화폐 및 전자지갑, 암호화폐 거래소 등 다수의 서비스를 기획하고 런칭하였지만 크게 성공한 기억보단 실패한 경험이 더 많았고, 2년 3개월에 걸친 창업도 결국 실패로 끝나는 등 끊임없이 도전하고 부딪히며 많은 실패를 경험하였다.
그렇게 깨졌는데도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젊었을 땐 실패를 두려워 말고 도전해도 괜찮을 것 같다.)

메신저로 유명했던 '버디버디'와 모바일 페이먼트로 유명한 '다날'을 거쳐 대기업에 입사를 했는데 한달 만에 대기업보단 스타트업이 잘 맞는 것 같다며 박차고 나와 작은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했을 땐 주변 지인들마저 그 좋은 대기업을 왜 그만두고 스타트업에 가냐고 미쳤다고 했다.
하긴 언제 망할지도 모르는 작은 스타트업에 연봉을 400만원씩이나 깎아가며 이직을 했으니 그런 이야기를 들을 만도 했다. 2010년 초의 일이었다. 

 

2010년 초까지만 해도 좋은 커리어를 쌓아왔는데 난 왜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을까... @.,@;;


국내는 좁고 경쟁도 치열하며 서비스 기획자로서 수명도 짧다 보니 해외로 나가고 싶었다.
내가 처음 해외로 나가고 싶다고 했을 때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내가 어떻게 해외로 나갈 수 있냐며 비웃었지만 정말 해외로 나갔다.
나스미디어, 버디버디, 다날, 교보문고 등 IT산업에서는 나름 괜찮은 커리어를 쌓아가며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는데 작은 스타트업으로 이직한다고 했을 때도 못마땅해했는데 갑자기 해외로 나간다며 필리핀의 작은 스타트업으로 연봉을 또 200만원이나 깎아가며 이직을 한다고 했을 땐 항상 응원만 해주던 가족조차 극구 만류를 했다.
그러나 결국 기대와 흥분, 걱정, 불안감, 두려움을 모두 껴안고 필리핀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Hi'도 제대로 말 못 할 정도로 영어 울렁증이 심했는데 말이다. 그렇게 무모한 도전을 계속해갔다.

2012년 초, 필리핀에서 돌아와 불쑥 창업을 한다고 했을 땐 주변의 차갑고 냉담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결국 저질렀다. 그렇게 2년 3개월 간의 창업이 실패로 돌아가 모아두었던 돈도 모두 날리고 빚만 남았을 땐 그럴 줄 알았다며 말릴 때 멈췄어야지 왜 했냐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그러다 돈이 없어 외출도 꺼리고 있는데 친구가 국밥 한 그릇 사주겠다고 불러 응원해줬을 땐 왈칵 눈물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사실은 가진 것이 하나도 없으면 겁이 없어지고 더 용감해진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5~6,000만원도 모두 사라져 가진 것도 없고 미혼이라 지킬 것도 없다 보니 세상에 무서운 게 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모두의 만류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으로 갔다. 중국 북경에 위치한 한 스타트업에 기획자로 이직을 한 것이다. 내가 중국에 간다고 했을 때 모두들 이젠 하다 하다 못해 중국까지 가냐는 반응이었다.
필리핀에 갔을 땐 영어 울렁증 때문에 영어 한마디 못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학교 정규 수업으로 영어를 수년간 공부했고 대학생활 내내 고시영문법과 토익을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그나마 먹고살 순 있었지만, 진짜 '니하오!, 니츠판러마?' 인사밖에 못하는 중국으로 간 것이다. 뭐 이쯤 되면 정말 무모한 도전이 따로 없다.
그래도 사업이 망해서 캐나다 벌목공으로 갈까도 생각했는데 멀쩡히 서비스 기획자로 일하러 가는 것이니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심산과 함께 급여 많이 받아 빚도 갚고 빨리 재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망설임조차 없었다.

나로호도 2번의 실패 끝에 성공했는데... ㅠㅠ


그런데 스타트업이 그렇다.
크게 성공할 확률은 극악무도하게 낮고 망할 확률은 99.99%다 보니 필리핀 회사도, 내 회사도, 중국 회사도 모두 망했다.
망하고 실패했지만 나쁘지만은 않았다.
남들이 못하는 다양한 경험을 했으니 이 또한 나쁘지만은 않은 선택이라고 자위했다.
그리고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냐고 했지만 난 살면서 크게 고생한 경험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진심으로 고생다운 고생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이게 고생이라고 한다면 난 또 할 수 있다.
물론 적지 않은 나이에 30대를 그렇게 해외에서, 창업으로 실패만 경험하며 보냈으니 가족과 친인척, 지인들은 오죽 걱정이 되었을까 싶어 이해도 되지만 주변의 차갑거나 걱정 어린 시선만 없었다면 더없이 좋았을 것 같다. 그 시선에 나 스스로도 항상 불안감과 두려움, 공포를 느꼈기 때문이다.
즉 고생은 안 했지만 항상 불안감과 두려움, 공포가 숨 죽여 따라다녔다. 그러다 불쑥 정체를 드러내면 잠을 못 이루고, 식은땀을 흘리며 깨기도 했지만 그건 고생은 아니니까... (차라리 고생을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다시 한국에 돌아와 1년 동안 블록체인 회사로 이직해 DApp과 전자지갑, 암호화폐 거래소를 기획하다 보니 어느새 마흔이 되었다. 지난 1년은 좋은 동료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즐거웠지만 업무가 개인의 가치관과 직업윤리와 충돌하여 보람도 없었고 인생에 큰 의미도 부여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다. :(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니 도전하고 경험하며 수없이 실패했지만 정말 액티브하고 다이나믹하게 살아왔다.
후회는 없냐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어찌 후회 없는 인생이 있을 수 있을까?
그래도 내 인생에 가장 도전적이고 다양한 경험을 한 시기였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인생의 한 챕터, #30을 마무리했다.


여기까지가 작년 12월 말에 나의 30대를 떠나보내며 작성해놓았던 회고글을 최근 시점에 맞게 정리한 글이다. 

발행을 미처 못하고 이제야 좋은 소식을 함께 전하며 발행을 한다.
아래는 최근 작성한 내용이다.


이제 마흔이다.
마흔이라는 숫자, 불혹이라는 표현이 참 그렇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고, 또 필리핀과 중국에서 서로의 나이를 잘 묻지 않는 문화에서도 살아보니 더욱 나이가 중요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마흔이 되니 느낌이 다르다. 마흔이 되니 나도 모르게 숫자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더라. 
이젠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고, 연애와 결혼도 하며, 정착을 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마흔이 되자마자 안정적인 생활을 상상하고 떠올리며 이직을 준비했다.
고작 마흔 살 밖에 되지 않았는데, 동료들은 나이와 고용지표를 고려하여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이 어려우니 현재 회사에 머물거나 조건을 조금 낮춰보라고 했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다.
어차피 인생이 도전과 실패의 연속인데 도전도 해보지 않고 미리 낮출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남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난 3월 초, 원하던 조건을 흔쾌히 수락한 한 회사에 입사가 확정되어 4월 1일부터 출근을 하게 되었다.
더불어 지난 14년 간의 경력과 경험이 헛되지 않았던지 한 유명 교육기관에서 서비스 기획 강의를 시작하게 됐다. 입사 확정 이후 며칠 지나지 않아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렇게 인생의 새로운 챕터, #40을 기분 좋게 시작하게 됐다.
이번 챕터도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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