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의 역설 ; 타이밍과 PO의 등장
경쟁사가 대대적인 할인을 시작하니 판매율이 떨어지며 매출이 급감을 한다.
경쟁사가 판매율과 함께 매출이 늘었다는 소식이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서 들려온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데 우리 회사는 최근 대표나 경영진 중심의 의사결정이나 경영(워터폴)보다는 데이터 중심의 수평적이고 투명한 의사결정 및 경영(애자일)을 강조하며 성장해 주변 기업들로부터 부러움을 받는 기업이다.
때문에 경쟁사의 할인 정책에 어떠한 대응을 할지 수많은 가설을 세우고 A/B 테스트를 진행하기 위해 준비를 한다.
2,000원을 할인할지, 10%를 할인할지, 쿠폰을 지급할지, 포인트를 지급할지, 할인 기간 및 쿠폰의 사용기간은 어떻게 할지, 전체 상품에 할인을 할지, 몇몇 카테고리 중심으로 할인을 할지, 테스트 표본은 어떻게 할지, 어느 지면에 어떤 배너 시안으로 노출할지 등 여러 관련 부서와 담당자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수많은 가설을 실험하고 이제 최적의 할인 방법을 찾아 모든 상품에 적용하려고 이벤트 페이지 및 배너 등을 제작하고 있는데 아뿔싸! 경쟁사가 기존의 할인 정책을 중단하고 새로운 마일리지 정책을 공개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데이터가 만능처럼 받들 여지는 시대, 데이터를 기준으로 수평적인 의사결정을 하면 해당 책임자는 심리적인 안정을 확보할 수 있고, 설득이 용이하며, 일부 책임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에 데이터를 통한 의사결정을 선호할 수 있다.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고 하루에도 수많은 이슈가 쏟아지는 현대 사회에서 모든 것을 데이터 기준으로 결정하는 순간 시간은 늦어지고 비용은 많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게 비즈니스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때문에 지나치게 데이터에 의존하거나 중시하는 기업 문화로는 빠르고 빈번하게 변화하는 비즈니스 전장에서 효율적인 전투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요즘 같이 전대미문의 시기에 데이터에 의존해서는 빠른 대응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데이터는 빠른 의사 결정 후 벌어진 전투에서 그 효율을 판단하고 사후 보정이나 개선하는 기준이나 근거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충분한 인력과 시간, 비용이 있어 일일이 실험을 통해 검증할 수 있다면 굳이 이를 막거나 반대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내가 십여 개가 넘는 기업을 다녀봤지만 그렇게 자원에 여유가 있거나 넘쳐나는 기업을 본 적이 없다. 대다수 프로젝트는 인력은 없고 시간은 짧으며 예산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수평적인 문화를 강조하는 스타트업에서 프로덕트 매니저 역할을 하는 기획자들은 워터폴 문화에서 막강한 책임과 권한을 가진 서비스 기획자에 비해 책임과 권한은 줄고 협의와 데이터 중심의 의사 결정을 통해 업무를 진행하다 보니 매니징 및 의사결정을 위해 갈수록 데이터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환경과 문화가 시장의 검증이 필요한 단순하고 기능이 적은 초기 제품을 만드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거대해지고 복잡해진 제품에서는 경쟁력과 대응력을 높이기에는 어려울 수 있다.
게다가 조직은 커지고 부서 및 구성원은 늘었으며 업무 외 프로세스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는 데다 이로 인해 수많은 잡일들도 같이 늘어났으며 부서 간의 이해관계 때문에 공통의 합의를 빠르게 도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속도가 계속 느려지며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빠른 의사 결정 및 목표 설정을 위해 성장한 스타트업들을 중심으로 의사결정의 책임과 권한을 부여한 Mini CEO라는 Product Owner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