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상처 vs. 상처

세균무기 2017. 8. 11. 00:00

하루는 염색을 하기 위해 미용실에 들렀다.
미용사는 머리에 수북하게 내려않은 새하얀 눈을 쓸어내리기 위해 수많은 비질이 아닌 빗질을 해댔다. 
염색약을 바르고 우두커니 앉아있는데 문득 손가락이 욱신거려 쳐다보니 상처가 났더라.
자세히 손과 팔을 이곳저곳 살펴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여러 상처가 생긴 걸 보고 어렸을 때는 상처 하나에도 울고불고, 연고도 바르고 그랬는데 이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나 자신을 바라본다.

오래전 아버지께서 다리에 큰 상처가 났는데 연고조차 바르지 않았는지 덧나 검붉은 딱지가 내려앉았다.
여동생이 연고 좀 바르시라며 걱정을 하니 무덤덤하게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왜 그러실까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이젠 내가 아버지를 따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이젠 나도 세상의 모진 풍파에 육체의 상처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이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솔로다 보니 저녁에 혼술을 하며 음악을 듣거나 드라마, 영화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울컥해서 눈물을 흘릴 때가 있다. 
예전부터 눈물이 많다는 이야기는 자주 들었지만 육체의 상처엔 갈수록 무뎌지는 것 같은데 마음은 더 여려지고 상처는 오래가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부단히 높은 장벽을 쌓아간다.
워커홀릭이라고 들을 정도로 일에만 집중하고 극도로 미니멀리즘한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감정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감정 소모 할 일을 극도로 회피하는가 하면 나 스스로를 속이며 삶과 인생을 끊임없이 포장하며 사람과 세상에 장벽을 쌓아가고 있다.
'난 이런 삶을 살아왔어. 난 이런 사람이야. 난 이런 가치관을 가졌어. 난 이렇게 살아가야 해.'라며 끊임없이 나 스스로를 속이고 정의하며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며
육체의 상처엔 약하고 마음의 상처엔 무심했던 한 어린아이가
육체의 상처엔 무심하고 마음의 상처는 무서워하는 한 어른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