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up

사업의 실패, 그리고 잃은 것

세균무기 2014. 12. 19. 12:00

 

19세기 말, 유럽에서 신대륙으로 이주한 이주민들은 동부 해안을 중심으로 터를 잡았다. 

미국인들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는 넓은 땅과 많은 인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고 이를 위해 이민자들에게 저렴하게 서부의 땅을 나눠주며 유럽 일대에 아메리칸 드림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마침 서부에서 많은 금광이 발견되면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이주한 수많은 이주민들이 금을 찾아 서부로 이주하는 골드러시 시대가 개막되었고 서부개척시대는 그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미 정부주도 하에 일확천금을 꿈꾸는 수많은 이주민들이 금을 찾아 약탈과 살인이 난무하는 약육강식의 무법천지, 서부로 골드러시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현재 국내 스타트업을 보고 있자면 정부주도 하에 서부로 골드러시를 떠나는 개척자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현 정부의 '창조경제'라는 경제정책 기조 하에 정부지원금과 투자금이 스타트업에 몰렸고 '돈이 있는 곳에 사람 있다.'라는 말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고 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사업을 하면서 보고 듣는 스타트업의 현실은 매우 참담하다. 국내 창업 생태계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스타트업 관련 통계가 속사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창업에 대한 리스크와 실패에 대한 이야기는 불문율처럼 이야기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 사회가 실패에 대한 관용이 없는데다 그 낙인이 워낙 깊어 이야기하길 꺼려하는 면도 없진 않겠지만 간혹 실패한 창업자들의 소회가 올라오면 뜨겁게 반응하는 것을 볼 때 다수의 사람들이 실패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보인다.

여하튼 포장되고 미화된 성공담은 넘쳐나지만 실패담을 듣는 것은 매우 어렵다.

창업을 준비하거나 시작하는 사람들에겐 그 실패담이 참 듣기 싫거나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거품을 키워야하는 사람들에겐 '당신의 무능함과 실패를 자랑하는 것이냐?'며 비난 받을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하기 짝이 없지만 실패를 경험한 창업자로서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한번쯤 꼭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창업자 10명 중 8명이 앞으로 겪게될지도 모를 일을 말이다.



빚의 늪

창업을 준비하고 시작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곤 했다.

 

"당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3배의 시간과 자금이 필요할 것이고 3배는 더 힘들 것이다."

 

우리 팀의 경우 누구나 알만한 또는 부러워할만한 회사(들?)에서 평균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팀원들로 구성되었고 수많은 프로젝트를 경험했기 때문에 예상했던 시간과 비용 내에서 서비스 출시가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아니 자만했다고 해야할까?
그러나 보기좋게 예상은 빗나갔고 
정말 2배의 시간과 3배의 돈이 들어갔다.

결국 준비한 자본금은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고 빚은 빠르게 늘어갔다.
정부지원금은 안 받았냐고 물어볼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정부지원금과 관련해서는 한 차례 이야기[
스타트업 정부지원금은 계륵일까?]를 했기 때문에 굳이 이 글에서까지 언급하진 않겠다.

여하튼 개인적으로 지난 7년간 모아두었던 돈은 어느새 사리지고 빚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게 되었다.

베어 그릴스는 혼자서도 늪에서 잘 빠져나오던데 나에겐 그런 생존기가 없는 것 같다.



시간과 사회로부터 받는 심리적 압박

참으로 시간은 야속하고 야박하다. 60초, 60분, 24시간... 언제나 똑같은 시간인데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가속도가 무섭게 붙는다. 붙잡고 싶었지만 붙잡을 방법이 없으니 결국 잠을 줄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나뿐만 아니라 대다수 창업자들이 이렇게 시간에 쫒기며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국 실패했고 주변의 시선은 위로보단 차갑고 따가웠으며 때론 냉담했다.

 

"남들은 결혼을 해서 자식도 낳고 돈도 모아 집도 마련하는 등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데 너는 그 2년 동안 도대체 무엇을 했냐?"

 

인간이 사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보니 사회로부터 암묵적으로 요구받는 사회적 기대치가 있는데 그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했고 마땅히 그 시기에 해야할 일을 하지 못했다는 사회적 비난을 면치 못했다. 때론 IT산업의 특수성과 스타트업을 창업한 당위성을 설명하며 나의 상황을 이해시키려 노력했으나 이해시키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안정적이고 평범한 삶을 포기하고 때를 놓친 나는 (그들에게) 루저가 되어 있었다.

수없이 겪었지만 마지막까지 스트레스와 멘붕엔 익숙해지지 않는다.



멀어져간 사람

수중에 돈이 없다보니 모임을 나가거나 사람을 만나는 일이 줄었다. 창업을 하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인간관계가 넓어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만나는 사람이 호주머니 걱정없이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죽마고우 아니면 서로를 잘 이해해주고 위로해줄 수 있는 스타트업 종사자로 한정되었다.

또한 사업이 기울면서 의기투합하며 함께 사선을 넘나들었던 팀원들간의 사이도 불편해졌다. 얼굴 붉히며 욕설을 주고받거나 주먹질을 했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렸는데 그나마 우린 좋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너무 화목한 나머지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던 가족과의 관계도 많이 소원해졌다. 예전 같았으면 연휴나 명절에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올라왔을텐데 이젠 고향에 내려가는 것 자체가 참 불편하다. 내려가면 불보듯 뻔한 스토리가 전개될테고 결국 서로 감정만 상하고 올라올테니 말이다.

인정하지 아니 할 수가 없다.



잃어버린 건강


잠자는 4~5시간을 제외하곤 매일 책상에 앉아
 하루종일 컴퓨터만 바라보고 있자니 그나저나 좋지 않았던 허리에 무리가 갔다. 한번은 앉거나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심각해 통원치료를 받았다. 통장에 잔고는 없는데 병원비는 또 얼마나 많이 나오던지 실비보험이 없었다면 꼼짝없이 회사가 망하기 전에 내 인생이 망가질뻔 했다.

그런데 중요한건 창업자가 곧 회사인 스타트업에서 누가 먼저 망하던 망가지던 똑같은 결론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니가 죽건 내가 죽건 다같이 죽는거야!



결국 사업에 실패하면 인생에 소중한 것들을 많이 잃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과 가치, 철학, 소명의식, 그리고 목표가 있다면 꼭 창업을 하길 바란다.

이들에겐 직장 내에서 시키는 일만 하는 것이 또는 단지 부모님이나 사회가 원하는 안정적이고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 스트레스로 다가오거나 자신의 소중한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워 할 수도 있으며 삶에 대한 죄악이자 모독으로 여길지도 모를테니 말이다.

그러나 단순히 취업난의 해결책이나 금전적인 일확천금을 노리기 위해 창업을 하겠다는 도망자와 도박가라면 극구 창업을 말리고 싶다.
그냥 그 돈으로 어학연수나 유학을 가던지 로또를 구매하거나 도박장을 가는 편이 훨씬 리스크가 작을테니 말이다.



 


 

 

결국 2년 3개월 간의 나의 짧은 여정이 이렇게 끝을 맺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으나 매출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는 서비스는 살아남았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나 실패한 이유, 실패로부터 내가 배운 것 등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때가 오면 그 때서야 하나둘 풀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후회보단 시원섭섭함이 많이 남는 여정이었고 눈에 보이는 많은 것을 잃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예전에는 생각치도 못했는데 이젠 어디로든 떠나거나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을 것 같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니까.

 


마지막으로 함께 고생했던 팀원들, 그리고 응원해주시고 도움을 주셨던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형, 모든 짐을 다 떠넘긴 것 같아 미안해요.)
그리고 오늘도 생사를 넘나들며 밤낮으로 고생하고 있는 스타트업의 선장과 선원들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P.S. : 이 글이 공개될 쯤이면 난 고작 몇 십만원 남은 통장의 잔고를 탈탈 털어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한국을 떠나고 있을 것이다.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조금 쉬다 다시 좋은 모습으로 찾아뵐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