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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tup

창업이란?

by 세균무기 2017. 8. 13.

한 후배가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싶다며 찾아왔다.
그런데 보통의 예비창업자나 창업자가 찾아오면 자신이 준비하고 있는 아이템을 소개하며 의견을 묻거나 준비하면서 겪는 문제나 어려움, 고민을 털어놓으면 하소연을 하거나 그도 아니면 이런저런 도움을 요청하는데 이게 웬걸?
창업을 하고 싶은데 좋은 아이템이 없냐고 묻는 것이다.
당혹스럽다.
후배가 어떤 조건을 갖추었는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전혀 모르는데 무작정 좋은 아이템을 소개해달라니 이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인가?

그렇다고 핫하디 핫한 머신러닝이나 블록체인을 활용한 아이템을 추천해준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좋은 아이템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현가능성이 있는 적합한 아이템이 중요한데 생떼를 쓰듯 좋은 아이템을 소개해달라니...!@#$%^&*() 

그렇게 좋은 아이템이 있었으면 벌써 내가 먼저 했겠지!!!


주말에 날씨도 더운데 멀리까지 찾아온 후배에게 정신 차리라고 시원한 냉면을 사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데 더욱 기가 찬 게 이 후배 준비된 게 하나도 없다.

함께 할 동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자신이 창업을 하면 한 개발자 친구가 함께 하기로 했단다.
이 후배, 개발자다.
기획자, 디자이너 등의 다른 동료는 없냐고 물으니 없단다.
그런데 이 후배, 조선족이다.
한국에서 창업을 경험해본 적도 없다 보니 한국에서 창업시 필요한 것조차 잘 모른다.
그냥 창업 생각에 들떠있고 성공의 단꿀에 흠뻑 젖어있는 것만 잘 알겠더라.
아무런 준비도 안 되어있는데 무슨 창업을 하겠다고 그러냐며 식사를 어떻게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창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한 시간은 족히 떠들었던 것 같다.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동료도 없고, 아이템도 없고, 충분한 자본금도 없는데 도대체 왜 창업을 하려 하냐고 물었는데 그 답변이 가관이다.
그 후배, 돈을 왕창 벌고 싶단다.
1억도 아니고, 10억도 아니고 한 100억쯤 벌어서 떵떵거리고 싶단다.
날씨가 더워 내가 더위를 먹었나? 내 귀가 의심스러워 되물었는데 역시나 똑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창업의 목표가 오로지 돈이라니...
설령 진짜 돈이 목적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대놓고 물으면 속마음은 숨기고 이런저런 좋은 의도를 이야기하며 진심이라 믿어달라고 이야기를 하는 게 보통인데 정말 당혹스럽다.
그러면서도 탐욕스러운 대표는 되지 않을 것이란다.
아서라~ 내가 그런 창업자들을 한 트럭은 족히 봤으니 말이다.

후배에게 이야기했다.
정말 돈이 목표라면 창업을 하지 말고 그 돈으로 로또를 사던지 투자를 하던지 그도 아니면 투기를 하라고.
창업은 대부분 실패하고 큰 돈을 벌기보다는 큰 빚을 떠안을 가능성이 크니 창업을 하지 말고 그냥 대기업에 들어가라고.
돈이 목적이 된다면 성공은 고사하고 데스밸리를 넘기기도 전에 빚만 떠안고 포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이다.
창업은 자신이 경험하거나 직면한 사회적 문제나 불합리한 구조를 그 누구도 개선해주지 않거나 자신이나 주변에서 겪는 불편함을 해결하고자 하는 강렬한 목표의식이나 절실함, 사명감, 소명의식이 있을 때 하는 것이다.
그도 아니라면 그 일이 실패를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재밌기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설령 실패를 하더라도 돈이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후회하지 않고 단순히 실패로 끝나기보단 이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으며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밑거름이 되어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창업의 정당성이자 창업가 정신이며 스타트업의 문화가 되고 실패를 하더라도 자산이 될 수 있는 선순환의 논리인 것이다.
그런데 그냥 돈이 목표라니...

창업을 결심한 사람들이 다들 그렇지만 아무리 이야기해도 들리지 않는다.
그냥 무조건 창업을 하겠단다.


중국어와 한국어가 유창한 조선족의 장점을 살려 한국상품을 중국에 파는 쇼핑몰을 하면 어떻겠냐고 묻길래 현재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 앞서 한국상품을 중국에 팔던 쇼핑몰을 오픈하여 망했고 현재 한국상품을 미국에 파는 쇼핑몰과 중국의 상품을 한국에 파는 쇼핑몰을 기획 및 운영하고 있는 경험을 이야기해주며 쉽지 않다고 설명을 했는데 오히려 이야기를 들으니 자신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쇼핑몰을 만들어야겠다고 한다.
한국 > 중국, 한국 > 미국, 중국 > 한국으로 상품을 보내는 모든 유형의 쇼핑몰 기획서가 다 있으니 기획서도 그냥 줄 수 있지만 정말 쇼핑몰 창업을 하고 싶냐고 몇 번이나 되물으며 정 쇼핑몰을 오픈하고 싶다면 일단 쇼핑몰을 개발하지 말고 타오바오나 위챗 등에서 물건을 팔아보라고 했다.
어떤 플랫폼이라도 괜찮으니 100개만 팔아보고 그 증거를 가져오면 기획서도 주고 다시 조언을 해주겠다며 말이다.

그렇게 3시간 동안 후배의 섣부른 창업을 만류하고자 목이 아플 정도로 떠들어댔는데 결국 결론이 쇼핑몰을 창업하겠다 라니...
창업이 자격이 정해진 것도, 거창한 것도 아니라지만 이런 후배까지 창업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걸 보면 정말 창업가가 형편없는 직업이 되어버린 것 같다.

창업이 멋있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실상은 이렇다. 수면에서 우아하게 보이지만 물 속에선 열심히 발길질을 해야하는 백조와 같다.


창업은 멋진 일이 아니다.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구질구질한 일도 해야 하고
때론 외부는 물론이거니와 내부의 동료들에게까지 자존심, 자존감마저 구겨야 하며
동료와 그 가족을 어깨에 짊어지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며 
자신과 그 동료의 미래를 담보로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동굴 속에서 앞장서 걸어가야 하는 위험천만하고 힘들고 고된 일이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돈 때문에 창업을 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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